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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99 - Small man, Big mouth

 한국인 인부들이 떠난 뒤, 현장 상황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끊이지 않는 건설사의 요구사항에, 관리자와 기술자의 스트레스는 높아만 간다. 건설사 직원들은 에어컨을 점검하면서 트집을 잡는다. 이전의 그는 매니저를 비롯한 한국인 인부들 속에 묻어가는 일종의 보호를 받았지만, 이제는 한국인 인부들이 없다. 건설사 직원들의 압박이 그에게까지 슬금슬금 영향을 끼친다.

 

 관리자가 에어컨 팀을 불러 모으는 횟수가 자꾸만 늘어난다. 관리자의 호출을 받고 모이면, 어김없이 건설사 직원들이 먼저 자리 잡고 있다. 에어컨 팀 전체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건설사 직원들은 이것저것 따지며 묻는다. 왜 조립을 이렇게 했느냐, 왜 일이 이렇게 되어 있느냐는 식이다.

 

 

 에어컨 재시공팀 중 남아 있는 초창기 인부는 그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나서서 에어컨 팀을 변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한다. 그는 일하면서 칭찬을 받아 자신감이 높아져 있다. 이전에는 매니저와 기술자가 대표 격으로 이야기했지만, 이제 매니저는 현장에 아예 없고 기술자도 다른 곳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 호출에 의해 모일 때마다, 건설사 직원과 관리자는 비슷한 내용을 계속 되묻는다. 그는 처음에는 모른다고 얼버무렸지만, 계속되는 추궁에 슬슬 하고 싶은 말이 쌓인다. 그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어야 했다.

 

 건설사 직원들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인부들을 추궁하는 관리자에게 조금 불만이 생긴다. 관리자는, 에어컨 팀과 함께 일하면서 초창기에는 아무 말도 안 하던 방식을 지금에 와서 갑자기 추궁하고 있다. 관리자는 맡은 직무상 어쩔 수 없이 건설사 직원들 앞에서만 그런 액션을 취한 것이겠지만, 당시 (건설현장 내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지 못한)그의 눈에는 관리자가 건설사에 가세한 듯 보였다. 조립할 때 덮개를 더 제대로 씌워야 한다느니, 선이 안 보이게 더 깔끔하게 정리를 했어야 한다느니, 육안으로 보았을 때 덮개가 볼록하게 튀어나오면 안 된다느니 하며 까탈스럽게 군다.

 

 물론 건설사의 말대로 완벽하게 조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건설사 직원들은 초창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는커녕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에어컨 시공팀은 빠른 속도 위주로 작업을 실행했었다. 관리자가 모든 조립 절차를 일일이 확인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한 모양새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일했고, 칭찬까지 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 자신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어쭙잖은 영웅 심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입을 연다. 그는 하라는 대로 했으며, 가장 아래층에서부터 같은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자, 건설사 직원들의 눈이 일시에 관리자에게 쏠린다. 관리자는 심히 당황한 눈치다.

 

 건설사 직원들은 관리자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떠난다. 건설사 직원들이 떠나자, 관리자는 그에게 피아식별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설사 직원은 믿어선 안되며, 건설사 직원이 있을 때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건설사가 문제를 제기한 것만 고치면 됐는데, 그의 자백으로 인해 아예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에어컨 팀 전원이 현장을 그만둘 때까지 별다른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이날 일이 끝나고 헤어질 때, 관리자가 했던 말을 그는 기억한다.

 "Today, We have a small man, but has a big mouth."

 딱히 누구라고 지목하진 않았으나, 당연히 그를 향한 말이다. Small man, 체구뿐만 아니라 일 측면에서도 작다는 뜻인 듯하다. 기술이나 전문적 지식 없이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인부, 일에서 그의 중요도가 크지 않다는 뜻으로 추측된다. Small man이라 불린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그의 심기를 더욱 건드리는 것은 Big mouth다. Big mouth, 직역하면 '입이 크다'지만 실제 사용되는 의미는 '입이 싸다'는 뜻이다.

 

 관리자는 웃으며 농담 식으로 한 말이지만, 그는 관리자의 말속에 뼈가 있음을 눈치챈다. 건설현장에서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괜히 허세만 가득 차서 나섰다가 역효과를 낸 상황이다. 차라리 영어를 못했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어땠을까 자책한다. 하늘을 찌르던 그의 자존감이 한순간에 꺾이고, 자신이 아직도 한참 멀었음을 깨닫는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자신의 실언으로 인해 일을 그만둔 한국인 인부들까지 욕을 먹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그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다. 이야기를 듣자 매니저는, 한국인 인부들은 이미 현장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되도록 빨리 일을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원래 그는 캠핑카 픽업 직전까지 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자 했으나, 매니저의 조언을 따른다. 그는 예정보다 4일 빠르게 일을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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