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캠핑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는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눈을 뜬다. 비가 완전히 그치진 않았지만,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다. 그는 검은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온다. 공기는 촉촉하게 젖어있으면서도 서늘하다. 그는 방수포를 비집고 나와, 텐트 주위를 살핀다. 비에 젖어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하다. 장대비와 바람으로부터 그를 품어준 텐트에 강한 동지애를 느낀다. 텐트 사용 첫날부터, 그는 텐트에 애정이 깊어진다.
다른 Travelmate들도 슬금슬금 텐트 밖으로 나온다. 잘 잤느냐는 인사가,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텐트가 약간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철거한다. 그는 텐트 설치도, 철거도 가장 빠르다. 그의 텐트가 가장 부품도 적고 간단해서도 있지만, 그의 군대 시절 경험과 성격도 이유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그는 텐트를 설치하거나 철거할 때, 어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한다. 다른 Travelmate들은 여유롭게, 철거하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하는 식이다.
차에 탑승해서,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운전은 차주가 그대로 한다. 차주는 운전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다. 나중에는 분명 체력이 떨어질테니, 그때부터는 돌아가면서 운전을 하자고 한다. 그와 Travelmate들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향한다. 그는 이미 가족들과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방문했지만, 한번 더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Great Ocean로드에 도착한다. 하지만 차주와 Travelmate들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그리 큰 흥미를 보이지는 않는다. 아폴로 베이에서부터 해안 도로를 운전하며 구경한 뒤, 가장 대표적인 장소인 12사도에 주차한다. 주차장에서 걸어들어가, 12사도를 배경으로 머리를 휘날리며 단체 사진을 찍는다. 가족들과 왔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다들 12사도를 보았으니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대한 미련이 없는 듯 보인다. 차주는 12사도에서 즉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이탈해서, 애들레이드 방향으로 향한다.
애들레이드로 가는 와중에, 들를 곳이 하나 더 있다. 독일인이 여행 전부터 이야기한 장소다. Timboon이라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가까운 내륙 지역이다. 이곳에 독일인의 친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독일인은 워킹홀리데이 약 8개월차이며, 첫 6개월을 바나나 농장에서 보냈다. 바나나 농장에서 다른 유럽 워홀러들과 일하며 돈도 많이 벌고 추억도 많이 쌓았다고 한다. 이 바나나 농장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 중 하나가, 현재 Timboon에서 살고 있어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다.
Timboon은 농장과 목장 위주의, 인구가 얼마 없고 지평선이 넓게 펼쳐진 외곽 지역이다. 독일인의 안내에 따라가니 한 농장 옆 개인주택에 도착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국인이 반긴다. 독일인의 친구다. 이탈리아계로 추정되는데, 정확하지 않다.
집에는 독일인의 친구 외에는 아무도 없다. 독일인과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눈치지만, 둘 다 반응이 담백해서 요란스럽지 않다. 친구는 이 집의 농장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집은 꽤 넓고 아늑하며, 가구가 잘 갖춰져 있고 화장실도 깔끔하다. 프랑스인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제대로 씻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샤워를 해도 된다는 말에, 프랑스인은 기뻐하며 바로 샤워한다. 그와 차주, 독일인은 간단히 양치만 한다.
프랑스인은 샤워를 하고 어느 때보다 기쁜 표정으로 나온다. 차주는 거실의 커다란 TV를 틀어 보고 있다. 그는 카펫이 깔려 있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바닥에 깔린 카펫이 비교적 깨끗하고 푹신하다. 그는 잠시 누워있으려 했는데, 어느새 잠에 빠진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다. 주방에서 뭔가 요리를 하고 있다.
독일인의 친구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타코를 만들겠다고 한다. 타코라고 해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울월스에서 파는 팩으로 된 타코를 보여준다. 팩 안에는 또띠아 여러장과 타코용 매콤한 소스가 들어 있다. 야채와 닭고기를 썰어 볶은 뒤 타코 소스를 넣어 섞으면 조리 끝이다. 또띠아를 데워서 싸먹으면 된다.
그는 키친핸드 경력이 있으므로, 도울 것이 없나 묻는다. 독일인의 친구는 적양파를 썰어달라고 한다. 그가 썰어주니, 독일인의 친구는 닭고기와 함께 팬에 볶는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독일인의 친구가 하는 것을 보니 간단하다. 독일인은, 친구 옆에서 무언가를 만든다. 타코에는 과카몰리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과카몰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독일인은 그에게 과카몰리가 무엇인지 모르냐며 놀란다. 그는 독일인이 만드는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 과카몰리는 아보카도를 으깨고 토마토를 잘게 썰어 섞은 뒤 소금과 후추, 올리브 오일로 간을 한 일종의 디핑 소스다. 그가 주말 시장에서 만들었던, Mashed Avocado와 비슷하다.
또띠아, 타코 소스에 버무린 닭고기 야채 볶음, 과카몰리를 식탁에 차린다. 음식을 준비한 독일인의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 뒤 타코를 먹는다. 또띠아에 닭고기 야채 볶음을 올린 뒤, 과카몰리를 살짝 넣고 말아서 먹는다. 팩 안에 들어 있던 타코 소스가 맛의 핵심이다. 멕시칸스러운 달달함과 매콤함이 느껴진다. 과카몰리는 아보카도가 주요 재료이므로 연두색이다. 얼핏 보면 와사비처럼 생겼는데, 맛은 와사비와 다르지만 역할은 비슷하다. 과카몰리는, 2% 부족한 맛을 채워서 균형을 잡는 역할이다. 아보카도의 부드러움과 신선한 야채맛이 그것이다. 모두들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맛있게 먹는다. 프랑스인이 특히 감탄사를 연발한다.
1인당 또띠아의 수가 정해져 있으므로, 그는 마음껏 먹지 못한다. 두 세장의 또띠아로 먹은 타코는 그의 간에 기별만 갈 뿐이다. 그는 속으로, 언젠가는 지금과 똑같은 양의 타코를 혼자서 다 먹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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