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mate들과 친해지면서,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가끔 당황스러운 상황도 발생했다.
첫 캠핑을 한 호주 남부 지역은, 비가 쏟아지고 담요를 둘둘 말아야 할 정도의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적도를 향하면서 날씨가 따뜻해진다. 자연스레 그와 Travelmate들의 옷이 얇아지고 살이 많이 보인다. 그는 프랑스인의 피부를 보다가, 수많은 털을 발견한다.
특히, 프랑스인의 등 부위 털이 신기하다. 그는 프랑스인의 등을 유심히 관찰한다. 프랑스인의 척추에서부터, 털이 등의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다. 마치 비버와 같은 동물들의 털이 결을 타는 것 같다. 그는 프랑스인 등의 털을 보며, 진화의 신비를 느낀다. 먼 옛날 인간의 조상이 바닷속에서 생활했던 흔적이라도 남은 것처럼, 털은 일종의 물결무늬를 그리고 있다.
그는 이 점이 너무 신기해서, 프랑스인에게 털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더, 이 털들을 보니 '동물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갑자기 프랑스인이, 그렇다면 자신은 그를 원숭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한다. 그가 이유를 물으니, 그의 성기가 작아서라고 한다. 그는 순간 벙찐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인종차별적 발언에, 그는 영문을 모른다. 옆에 있던 독일인은 그와 프랑스인 모두에게, "Be nice to each other (서로에게 친절합시다)"라고 말한다.
프랑스인은 그의 '동물 같다'는 발언을, '동물처럼 진화가 덜 되어 미개하다'는 식의 공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진화의 신비에 감탄하며 한 말이지만, 프랑스인은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스인은 자신이 받은 모욕을, 그 이상의 표현으로 받아친 것이다. 그는 전혀 악의가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인은, 인종이나 동물 관련 발언에 민감하다. 그는 애초에 동물에 대해 말할 때 '진화가 덜 되었다, 미개하다'는 식으로 사용해본 적이 없고 그럴 의도조차 없다. 외국인들은 그런 비하의 표현을 많이 접해서인지, 본인들이 직접 사용해봐서인지, 이유가 무엇이든 동물이나 인종 관련 발언에 대해서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당연스럽게도, 프랑스인도 자신이 예민한 주제는 예민하지만 둔감할 때는 한없이 둔감하다.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로드트립 중간중간 관광객이 많은 곳을 방문할 때가 있다. 그런 유명 관광지에는 언제나 관광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 관광객 무리는 시끄러운 경우가 꽤 많다. 프랑스인은 이 모습을 보며 항상, 자신은 중국인이 싫다고 말한다. 동물과 인종 관련 발언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프랑스인이, 막상 본인은 중국인이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입을 다문다. 나중에 들어보니 독일인도, 이렇게 경치 좋은 장소에서 왜 굳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깨는지 의문스러웠다고 한다.
그와 프랑스인 사이에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눈에 대한 대화다. 프랑스인은 그에게, 동양인들은 눈이 작다고 말한다. 이 발언은 오히려 인종차별에 가까운 발언이다. 프랑스인은, 인종차별적 의도는 아니지만 실제로 동양인은 눈이 작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인의 이 발언을 반박하고 싶다.
그는 실없는 소리를 잘했으므로, 약간 헛소리이지만 나름의 논리를 섞어서 반박한다. 동양인들의 눈은 작은 것이 아니라, 작아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동양인들이 'Smiling eye(웃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하회탈의 반달 모양 눈을 만든다. 그가 즉석에서 만든 궤변이자 억지 논리다.
하지만 그의 억지 논리에, 프랑스인은 당황한다. 프랑스인이 그의 눈웃음을 따라해보지만 상당히 어색하다. 눈웃음에 실패하며 당황하는 프랑스인을 보며, 그는 자신의 궤변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프랑스인은 눈웃음을 연습하며 말이 없다. 그의 'Smiling eye' 이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눈웃음을 약 10차례 정도 연습하자, 그가 보기에도 프랑스인의 눈웃음이 처음에 비해 상당히 자연스러워진다.
프랑스인이 약간 당황할 정도로, 그의 궤변은 엉뚱하긴 했지만 아예 헛소리는 아니다. 유현준 건축가의 책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인용하면, 동양인들은 웃는 표정을 타자로 칠 때 '^^'로 표현하고 서양인들은 ':)'로 친다. 동양인들은 눈으로 웃고 서양인들은 입으로 웃는 셈이다. 서구식 외모에 가까운 연예인들이나 서양 배우들은, 웃음을 지을 때도 눈 모양은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아름답고 멋있는 외모에 가려서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일반 동양인들이 눈은 그대로 둔 채 입으로만 웃으면 상당히 어색하다. 눈을 웃음이나 감정 표현에 사용하는 빈도는 눈 주위 근육의 움직임과 크기에 영향을 주어, 보이는 눈의 크기에 미미하게나마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서양인은 볼록한 얼굴인데 반해 동양인은 넓적한 얼굴인 것도 눈의 크기가 달라 보이는 커다란 요인이다.
그가 프랑스인과 나눈 대화는, 약간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좋고 한없이 명랑한 상태였기 때문에 논리는 없지만 쾌활하게 받아친다. 그의 이러한 반응에, 프랑스인을 비롯해 다른 Travelmate들은 그를 재밌고 쾌활한 사람으로 여긴다.
한 번은 첫키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와 Travelmate들은 경치가 좋은 산이나 언덕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오르내리곤 했다. 등산과 트래킹을 하며, 입이 심심하니 갖가지 주제로 이야기한다. 갑자기 주제가 첫키스로 넘어간다. Travelmate들은, 자신들의 첫키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대가 누구였고, 자신은 몇 살이었고, 장소는 어디고, 느낌이 어땠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도, 첫키스를 하긴 했다. 하지만 굳이 떠벌리고 싶진 않아서, 가만히 다른 이들의 경험을 듣는다. 평상시에는 말이 많고 시끄러운 그가 조용하자, 프랑스인이 그에게도 묻는다. 그런데 질문이 약간 이상하다.
프랑스인 : What time was your first kiss? (영어가 서툴러서, When이 기억나지 않은 듯하다)
그 : I'm not sure, 10pm?
문맥과 이전의 대화들을 보았을 때, 몇 살 때 첫키스를 했냐는 질문이었을 터다. 하지만 프랑스인은 실수인지 무엇인지, What time이라고 물었다. 몇 시였냐는 질문이다. 그는 굳이 자신의 첫키스에 대해 세세히 밝힐 생각이 없었고, 몇 시였냐고 질문을 받았으니 10시 즈음일 거라 답한다. 그의 대답에 독일인은 폭소하고 프랑스인은 당황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캠핑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고 샤워 횟수는 줄어든다. 그와 Travelmate들은 샤워가 불가능할 때는 간단하게 세안과 양치만 한다. 서양인은 동양인에 비해 체취가 강하다. 그는 Travelmate들의 체취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Travelmate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체취를 참지 못한다.
그를 제외한 Travelmate들은, 'Chemical Shower'를 한다. 시작은 항상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은 코를 킁킁하고는, 가방에서 둥그런 막대기를 꺼낸다. 데오드란트다. 데오드란트를 목, 팔, 겨드랑이 등에 문지른 후 "Chemical shower 할 사람?" 하고 묻는다. 그러면 독일인과 차주가 데오드란트를 이어받아 화학적 샤워를 한다. 그는 속으로 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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