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상/호주

224 - 송금, 의료보험비 환급

 로드 트립이 끝났다.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그는 다시 자신의 워킹홀리데이를 이어간다. 그는 우선 배를 채운다. 로드 트립 동안 배불리 먹은 적이 별로 없고, 기대했던 마지막 식사도 비교적 조촐했다. 로드 트립이라는 커다란 경험을 한 것과 무사히 끝난 것을 자축할 겸, 그는 배불리 먹기로 결심한다. 그가 향한 곳은 헝그리 잭스다. 이전처럼 패밀리 번들을 시켜서 모조리 먹어치운다. 혼자 헝그리 잭스에서 패밀리 번들을 먹으며, 그는 로드 트립이 끝났다는 사실과 아직 워킹홀리데이 중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는다.

 

 Travelmate들과의 연락이 바로 끊어지지는 않는다. 차주는 다윈 도심에서 열리는 어떤 행사가 있다며 단체 메신저 방에 올렸고, 다들 해당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는 독일인과 따로 연락이 닿아, 독일인이 지내는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가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여행 이야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과 약간의 뒷담화 등이다. 독일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신 때문에 불편한 적은 없었냐고 묻는다. 독일인은 쿨한 표정으로, 그에게는 어떤 불만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인의 말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의 로드 트립 막바지 행동들을 돌이켜보았을 때, 독일인은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가졌거나 하얀 거짓말을 한 것 같다. 프랑스인도 향후에 따로 만날 일이 생긴다.

 

 

 그가 다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은행이다. 그의 비자가 점점 만료 시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동안 번 돈을 통장에 그대로 넣어 두었다. 이제 비자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큰돈이 필요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는 Nab은행 다윈 지점을 방문한다.

 

 처음 은행 계자를 만들려고 방문했던 브리즈번의 Nab은행처럼, 다윈의 Nab은행도 검은 카펫이 깔려있고 깔끔하다. 그는 자신의 목표 저축액인 1만 불을 한국 계좌로 송금하고자 한다. 은행 직원은, 해외 송금에는 수수료가 든다고 말한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므로, 그는 흔쾌히 수락한다. 직원은 잠시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성공적으로 송금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와, 핸드폰 앱으로 잔액을 확인한다. 그의 계좌에서는 1만 불이 빠져나가, 가벼운 계좌가 되었다.

 

 그는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은 계좌를 보면서, 돈이 없을 때 특유의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보다 후련함이 더 크다. 1만 불 이상 계좌에 있을 때는, 혹시나 해킹당해서 이 돈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이 돈을 지켜내지 못하고 다 써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목표 저축액인 1만 불을 잘 지켜냈고, 무사히 한국 계좌로 송금했다. 그가 워킹홀리데이의 목표로 설정한 3가지(경험, 영어, 돈) 중, 한 가지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한 것이다. 그간 돈을 벌려고 많은 일을 했던 나날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고, 곧이어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밀려온다. 줄어든 잔액의 통장 계좌를 보며, 그는 오히려 후련함을 느낀다.

 

 

 그가 후련함을 느낀 이유는, 목표 달성에 대한 성취감도 있지만 그의 성격 탓도 있다. 그는 1만 불이라는 거금의 돈을 쥐고 있을 때 노심초사했다. 그는 이 정도의 거금을 손에 쥔 적이 없다. 막상 거금을 쥐게 되자, 거금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 근본적으로 내장된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는 가볍고 거리낄 것이 없지만, 1만 불밖에 안되더라도 돈을 손에 쥐고 있으면 잃을 것이 있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는 1만 불이 통장 잔고에서 사라짐으로써, 다시 워홀 초창기로 돌아갔다. 차도, 돈도, 표면적으로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잃을 것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를 되찾은 것이다. 가벼워진 통장만큼 그의 발걸음과 기분도 날아갈 것 같다.

 

 

 다윈에 도착하고 카카오톡을 보니, 호주 단체 톡방이 시끌시끌하다. 세금 환급 관련 이야기다. 이전에는 워홀러들도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호주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워홀러들의 세금을 환급해주지 않는다. 그도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세금을 냈지만, 그 세금은 환급받을 수 없다. 그런데, 워홀러들도 환급받을 수 있는 세금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의료보험비다.

 

 호주 정부가 떼어가는 15%의 세금에는 여러 종류의 세금이 섞여있는데, 이 중에는 의료보험비도 있다. 다른 세금은 환급해주지 않지만, 의료보험비의 경우 워홀러들은 호주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신청할 경우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해당 정보를 알려준 익명의 구성원에게 고맙다는 톡을 보낸 뒤, 의료보험비 환급 방법을 찾는다.

 

 의료보험비 환급을 위해서는, 호주 정부 부처에 민원을 넣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먼저 다운받아야 한다. 호주 정부도 나름 전산화가 진행되어서, 컴퓨터 없이 핸드폰만으로도 세금 환급 신청을 할 수 있다. 호주 정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세금 환급 민원 신청을 한다. 그가 민원 신청을 한 지 15분도 안 되어 전화가 울린다. 목소리는 깔끔한 공무원 남성이다.

 

 남성은 그의 민원을 해결해주기 위해 몇몇 질문을 한다. 비자 상태, 만료일자, TFN(텍스 파일 넘버), 여권 번호 등이다. 정부, 세금과 관련된 용어들은 딱딱하고 공적인 영어를 쓰기 때문에 그에게는 상당히 어렵다. 그는 민원 신청을 하면서, 공무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하지만 통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공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잘 설명해주었고 어려운 용어도 거의 쓰지 않는다. 마침내 전화기 속에서 키보드 소리가 멈춘다. 공무원은 모든 절차가 끝났다며, 의료보험비 450불을 지금 바로 환급해주겠다고 말한다.

 

 

 의료보험비 환급은, 멜버른에서의 자동차 등록세 환급 때처럼 그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수입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차에, 450불이나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그는 감동한다. 전화 속 친절한 목소리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한다. 돈도 돈이지만, 그의 자신감이 크게 상승한다. 혼자서 정부 기관 웹사이트를 찾아보고, 어플로 민원을 신청한 뒤 전화 통화 끝에 성공적으로 환급을 받았다.

 

 그도 처음에는 지레 겁을 먹었다. 호주 정부는, 그처럼 처음 민원을 신청하는 외국인들도 잘 따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다. 그는 겁먹었으나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자력으로 환급을 해낸 자신이 자랑스럽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부터 시작해서 핸드폰 유심 구입, 개통, 숙소 예약, 일자리 구하기, 차량 명의 변경, 폐차, 등록세 환급 등 많은 것들을 해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별 것 아니지만, 처음 시작이 어려워 지레 겁을 먹고 대행사에 돈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겁먹고 포기하지 않고, 이런 소소한 것들을 직접 하나하나 성취했다. 조그맣고 소소하지만 이러한 성취가 계속해서 쌓여, 워킹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독립심과 자신감의 밑바탕을 이룬다. 그가 워킹홀리데이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값진 것의 밑바탕인 셈이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6 - Aborigine과의 만남  (0) 2021.10.22
225 - Rainy Season Maker  (0) 2021.10.22
223 - 도착, 로드 트립 종료  (0) 2021.10.22
222 - Kangaroo, 어보리진 그림  (0) 2021.10.22
221 - 로드 트립 홍보대사  (0) 202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