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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25 - Rainy Season Maker

 다윈, 영어로 쓰면 Darwin이다.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주창한 생물학자의 이름과 스펠링이 같다. 그는 도시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수평선이 펼쳐진 해안가에서 어떤 돌을 발견한다. 돌에는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얼굴과 생애가 조각되어 있다. 호주 최북단의 도시 다윈의 이름은,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찰스 다윈은 영국인이다. 역시 호주는 영국의 영향이 짙다.

 

 호주 북부 도시 다윈은,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야자수가 많으며 날씨도 열대성 기후에 가깝다. 즉,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날씨다. 그가 도착한 때는 건기라서 햇볕이 화창하다. 하늘에는 구름조차 없다. 야자수에 어울리는 날씨다.

 

 

 그는 숙박비가 더 싼 백패커스로 숙소를 옮겼다. 옮긴 백패커스에서 만난 룸메이트들과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주로 일자리에 관해 묻는다. 대부분 여행객인 룸메이트들 중에서, 일을 하는 룸메이트가 딱 둘 있다. 독일 국적의 남녀 한 쌍이인데, 커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둘 다 웨이트리스와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은 굉장히 쾌활하고 명랑하지만, 남성은 풍기는 분위기가 어둡고 말투도 냉소적이다.

 

 여성은 웨이트리스 일을 자주 했고,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꾸며 입고 어딘가로 놀러 나간다. 남성은 웨이터 일도 드문드문하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뚱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다른 룸메이트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조리 나가고 없어서, 그는 주로 독일인 남성과 대화한다. 단둘이 대화를 하니, 독일인 남성의 어두운 분위기와 냉소적인 말투가 제대로 느껴진다. 독일인 남성은 웨이터 일도, 다윈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독일인 남성의 말을 들으며, 무슨 반응을 해줘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독일인 남성은 그의 구직 가능성도 부정적으로 예상한다. 웨이터 일을 구하긴 했지만 손님이 없어 여기서 놀고 있는 자신을 보라며, 갈수록 일이 줄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인 남성은 그에게, 우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우기, 즉 비수기다. 그는 우기와 비수기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의 웃음은, 포기와 자조가 섞인 웃음이다. 그는 요행이나 행운을 믿지 않았고, 자신을 운이 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브리즈번에서 100군데나 이력서를 돌려 간신히 4곳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얼마 못가 비수기로 인해 불안정해져서 공장에 들어갔다. 이제 다윈에 와서 또 일을 구하려는데, 이렇게 햇빛이 쨍쨍한데도 우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그가 웃음을 멈추지 않자, 독일인이 따라 웃으며 왜 웃느냐고 묻는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비와 비수기가 따라다닌다며 자신을 'Rainy Season Maker'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뚱하고 냉소적이었던 독일인이 처음으로 폭소한다. 얼마 후 독일인은 체크아웃면서 그에게, 자신이 만났던 룸메이트 중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떠난다.

 

 

 우기가 다가오고 있다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하지만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는 굉장히 적으며, 그가 이력서를 보내도 답장이 거의 없다. 검색 지역의 범위를 넓히고 넓히던 그의 눈에 한 공고가 보인다. 이름도 생소한 외곽 지역에서 배에 탈 선원을 모집한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해당 지역은 다윈에서 차로 약 2시간 떨어진 시골의 어촌이다.

 

 공고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여성이 받는다. 그가 공고에 대해 물으니, 배에 타서 이런저런 작업을 돕는 일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배가 한번 나가면 약 1달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살짝 놀랐으나, 그의 비자가 그 정도 남았으니 알맞은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구글 맵 로드뷰로 어촌을 보며, 완벽한 오지에서 어부처럼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워킹홀리데이 막바지를 그렇게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선착장까지의 거리가 멀다. 반드시 가고자 하면 갈 수는 있겠으나, 번거롭고 귀찮을 터다. 그는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한다. 전화 속 목소리는, 약 일주일 뒤 출항이니 그전까지는 반드시 도착해서 배에 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목표액을 저축해서 한국에 송금했기 때문에 돈이 그리 급하지 않다. 통장 잔액이 가볍긴 하지만, 하루에 2끼만 싼 음식과 과자로 적당히 때우면 버틸 수 있다. 그는 화창한 다윈의 하늘 아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그냥 배를 타지 않기로 결정한다. 훗날 그가 워킹홀리데이를 먼저 다녀온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는 그가 만일 배를 탔다면 어디 팔려가는 것 아니었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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