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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26 - Aborigine과의 만남

 다윈의 느낌이 브리즈번과 비슷하다곤 하나, 브리즈번은 호주 제3의 도시다. 그는 다윈의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브리즈번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구나 규모에서 다윈은 현저히 작다. 브리즈번 도심과 같은 고층빌딩은 없다.

 

 

 그는 구직 활동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로드 트립도 그렇고 워킹홀리데이도 그렇고, 꽤나 숨 가쁘게 달려왔다. 자신에게 선사하는 휴식이라 생각한다. 날씨도 따뜻하고 도시도 아기자기하니, 그는 밤에도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꽤 늦게까지 있는다. 바깥에 있다가, 식료품점이 문 닫기 직전 들어가 저녁거리를 사서 나온다. 그의 저녁은 과자와 우유다.

 

 그는 호주 특산품인 팀탐이나, 콜스에서 판매하는 2.5불짜리 초콜렛 빵을 산다. 보통 팀탐이 더 비싸기 때문에, 주로 후자를 구매한다. 팀탐이나 초콜렛 빵을 그냥 먹으면 목이 막힌다. 그는 우유를 함께 사서, 팀탐이나 초콜렛 빵을 입에 문 채로 우유를 마신다. 우유로 팀탐과 빵을 적셔서 먹는다. 목 넘김이 부드러워지고, 포만감도 더하다. 팀탐이나 빵의 포장지를 뜯으면 낱개로 약 10개 이상 들어있기 때문에, 우유와 같이 먹으면 나름 요깃거리가 된다.  

 

 

 그는 저녁 식사를 이렇게 초콜렛 빵(가끔 팀탐)과 우유로 대충 때운다. 식료품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나오면 벌써 해가 져서 깜깜하다. 다윈은 밤에 해가 져도 날씨가 따뜻하다. 그는 식료품점 근처 벤치에 앉아서, 빵과 우유를 뜯어놓고 천천히 먹는다. 이렇게 먹고 있으면,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호주 원주민, Aborigine(어보리진)이다. 호주 북부 준주에는 어보리진이 많이 산다. 아웃백 내부에 사는 어보리진들은 주로 어보리진 특유의 문화나 예술 등을 관광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등의 업종에 종사한다. 그리고 북부 도시인 엘리스 스프링스나 다윈에도 어보리진들이 많이 사는데, 도시에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눈에 도시 속 어보리진들의 모습은 난민처럼 보인다.

 

 

 그가 한밤에 벤치에 앉아 빵이나 우유를 뜯어서 먹고 있으면, 슬금슬금 어보리진 한 명이 다가온다. 항상 여성이 다가오며, 남성을 본 적은 없다. 여성은 어느덧 그의 시야에서 존재감을 내뿜는 위치까지 다가온다. 그리고선, 그가 먹고 있는 빵을 가리킨다. 하나 달라는 것이다.

 

 그에게 다가온 어보리진 여성은 30대 후반에서 40대의 나이로 보이며, 피부와 머리가 모두 까맣고 천으로 된 옷을 입었다. 까만 피부 때문에 옷의 색깔이 도드라진다. 그가 본 어보리진 여성들은 다들 흰색, 빨간색, 파란색 등의 원색 옷을 입고 있다. 피부가 까만 데다 해가 진 저녁이기 때문에, 옷에 때나 얼룩이 묻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꽤나 관대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호주 원주민인 어보리진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그럽게 빵 하나를 건넨다. 사실 그는, 초콜렛 빵을 계속 먹다 보니 물렸기 때문에 하나 정도는 줘도 크게 상관없다. 빵을 건네받자 어보리진 여성은 씨익 웃으며 그를 좋은 사람이라 말하더니, 벤치 앞 땅바닥에 그대로 눌러앉는다.

 

 

 어보리진 여성은 빵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도 바라던 바였으므로, 어보리진 여성의 말을 들어본다. 어보리진 여성의 말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 영어이긴 한데, 뭔가 다르다. 알 수 없는 억양이 섞여서, 영어로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영어에서 파생된 어떤 방언을 간신히 알아듣는 느낌에 가깝다. 주의 깊게 들어보니, 어보리진 여성은 자신의 가족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카가 누구고, 고모가 누구고, 이모가 누구고, 할머니가 누구라는 식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에는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식료품점 앞 벤치에 앉아 어보리진 여성과 대화하고 있으니, 주변으로 슬그머니 다른 어보리진 여성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와 이야기하던 어보리진 여성은, 저 사람이 자신이 말한 고모라고 말하며 고모를 부른다. 여성의 부름에, 고모도 벤치 쪽으로 다가온다. 고모라는 여성은 다가와서, 그에게 똑같이 빵을 요구한다. 그는 고모에게도 빵을 준다.

 

 처음의 어보리진 여성, 두 번째로 합세한 고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자 했으나,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충 가족들끼리의 무슨 대화인 것으로만 짐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모라는 여성이 주변의 어보리진 여성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고모가 합세한 지 2분도 안되어, 그의 주변으로 어보리진 여성들이 대여섯 모인다. 훑어보니,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해 보인다. 다들 올 때마다 그에게 빵을 요구했으며, 맨 처음의 여성은 나중에는 우유까지 요구한다. 그는 우유통에 입을 대고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마실 만큼 마시고 아예 줘버린다. 우유를 받더니 온 여성들이 다 같이 돌려마신다. 어보리진 여성들은, 그의 빵과 우유를 양식 삼아 부녀회를 열고 있다. 그는 대화에 끼지 않고, 끼지도 못한다. 어보리진 여성 대여섯이 모이자, 금세 시끄러워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그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킬 필요를 느끼지 못해, 남은 빵과 우유를 두고 그냥 일어난다. 맨 처음의 여성만 인사하는 시늉을 할 뿐,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그는 자신이 열린 시각을 가진, 너그럽고 자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보리진들은 호주 역사를 통틀어 백인에게 박해당한 편에 속한다. 그런 어보리진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길바닥에서 빵 한 조각을 함께 나누며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어쭙잖은 동정심과 오만한 호기심도 존재했다. 자신의 눈에 난민처럼 보이는 어보리진에게 너그럽게 빵을 나눠주며, 동물원 관람객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이중성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보다는 어보리진 여성들과의 만남이 자신이 원했던 정보 교류 차원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이 더 불만족스럽다.

 

 

 그는 이튿날 한 번 더, 다가오는 어보리진 여성의 요구대로 빵을 나눠준다. 어보리진 여성들이 그를 기억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한층 빠르게 여성들이 몰려든다.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빵과 우유만 빼앗기고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어보리진 여성들은 그의 빵과 우유를 나눠먹으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자신들끼리 이야기한다. 심지어 이번에는, 그의 배가 어느 정도 차기도 전부터 다가오더니 시끌시끌해졌다. 그는 짜증을 참으며 자리를 뜬다.

 

 이후에도 그가 식료품점 앞에서 빵을 먹고 있으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던 어보리진 여성이 어김없이 그에게 다가온다. 식료품점 주변에는 어보리진 여성이 꽤 많고, 도시 도로 여기저기에 쇼핑 카트 같은 것을 끌고 다니는 어보리진 여성들도 꽤 있다. 그는 이제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한 번 빵을 주면, 첫 여성이 다리가 되어 주변의 다른 어보리진 여성들을 끌어들일 것이며 결국 그는 과자로 때우는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어보리진 여성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리를 뜬다.

 

 그는 식료품점 앞에서 무언가를 먹는 것 자체를 그만둔다. 어보리진 여성들은 그처럼 먹거리를 먹는 이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어쭙잖은 동정심과 호기심으로 빵을 나눠주었으나,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요구에 그도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는 울룰루와 엘리스 스프링스의 역사박물관에서 보았던 어보리진들의 역사를 기억한다. 영국 백인들에게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몰살당하기도 했으며, 호주 정부에 의해 아이들이 강제로 가족과 떨어져(Stolen Generation) 수용당하기까지 했다. 현재 호주 정부는, 호주 대륙 원주민인 어보리진에 대한 태도를 우호적으로 바꾸었으며 각종 보조금 등 여러 혜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역사 속 여러 사건들로 인해 상황은 이미 많이 망가져 있다.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차주(호주인)와 인종차별적 관점을 가진 세 캠퍼들은 어보리진을 도둑이라고 말했다. 틈만 나면 차 유리를 깨고 물건을 가져가니 조심하라며, 유용한 팁을 공유하듯 말했다. 그가 엘리스 스프링스와 다윈에서 본 어보리진들은, 맨바닥에 앉아 있는 이들이 많아 난민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다수 어보리진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터다. 울룰루나 카타 추타 같은 어보리진 관련 관광지에서 가이드로 일하거나, 어보리진 전통 악기 / 무기 / 그림 등을 만들거나 팔면서 관광객과 사진을 찍는 직업 위주로 보인다.

 

 건방지긴 했지만 어보리진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가졌던 그조차도, 다윈에서 어보리진 여성들을 몇 번 본 뒤로는 자리를 피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차주와 엘리스 스프링스의 캠퍼들의 말이 서글프지만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각하기에 호주 국민과 정부의 입장에서 어보리진 문제는 뿌리 깊으면서도 복잡한 치부다. 역사적으로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러 공식적으로는 사과와 보상을 해주는 듯 보이나, 근본적 해결책이라기보다 표면적 미봉책에 가깝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될지 몰라 겉만 임시로 꿰매 놓고, 어보리진 관련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어서 시간이 지나 자신들의 치부가 흐릿해지길 바라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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