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카지노의 풀장은 화창하고 여유롭다. 카지노에서 신경 써서 만든 풀장은, 앞쪽 시야가 해변으로 뚫려 있다. 뒤에는 하얀색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의 카지노 건물이 자리 잡고, 앞쪽에는 해변과 탁 트인 수평선이 보인다. 이용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탁월한 구조다. 풀장은 카지노를 이용하지 않아도 무료로 쓸 수 있지만, 샤워장이 있는 카지노 건물 측에 식당과 카페가 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 줄을 서서 맥주나 물 등을 사고, 풀장에 설치된 파라솔 아래에서 마시며 햇빛을 즐긴다.
첫눈에 그에게 보인 점은, 풀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점이다. 동양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가 이 풀장의 유일한 동양인이다. 그는 굳이 신경 쓰지 않고자 했으나, 약간 위축되는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는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하지만, 일단 왔으니 루이사는 만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풀장 입구 쪽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으니, 루이사가 먼저 그를 발견한다.
루이사는 백패커스에서와 같은 비키니 차림이다. 루이사가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한다. 루이사는 그를 풀장 옆 한 파라솔에 자리 잡은 무리에게 데려간다. 루이사가 그를 소개하고, 그도 무리에게 인사한다. 대부분 남성들이다. 무리는 그에게 맥주를 권유했지만, 그는 자리가 불편해서 빨리 떠날 생각에 사양한다.
루이사는, 저기 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한다. 풀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흑인 남성이 다가온다. 물속에 있을 때는 햇빛이 굴절되어 꼬마처럼 보였는데, 물 밖으로 나오니 실로 거대하다. 흑인 남성은, 키가 2미터는 되는 듯하다. 떡 벌어진 어깨, 선명한 복근, 흑인 특유의 길쭉하면서도 전신의 근육이 골고루 발달한 군살 없는 몸매다. 그야말로 NBA 농구 선수 같은 몸매다. 루이사의 소개에, 그는 이 흑인 남성과 악수한다. 흑인 남성은 손도 크다. 루이사는 그에게, 이 남성이 자신의 남자 친구라고 말한다.
콰광! 그는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이다. 걸어오면서 그가 기대했던 모든 것,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되었다. 그는 속으로, 이럴 거면 자신을 굳이 왜 여기까지 불렀나 은근히 불만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눈앞의 흑인 남성은 그가 보기에도 건장하고 멋진 남성이다. 그는, 흑인 남성과 악수를 하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그가 무리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루이사는 풀장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는 루이사를 따라 풀장에 들어간다. 흑인 남성은 자신의 여자 친구가 그와 물에 들어가던 말던 전혀 관심이 없다. 흑인 남성은 쿨하게 선글라스를 끼고, 파라솔 밑에 눕는다.
그는 물안경이 없기 때문에, 개구리헤엄을 친다. 루이사는 물안경 없이 잠수했다가, 바닥에 턱을 긁혀 턱이 빨개졌다. 이는 그도 경험한 적이 있다. 호주의 야외 수영장 바닥은, 한국의 실내 수영장처럼 매끄러운 타일이 아니라 상당히 거칠다. 맨살이 닿으면 그대로 긁히며 잘못하면 피가 난다.
카지노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인만큼, 수영장이 깊고 시설도 꽤 좋다. 가장 깊은 지점은 그의 발이 전혀 닿지 않으며, 2미터가 넘는 듯하다. 풀장의 끝은, 담의 윗부분을 살짝 깎아서 물이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게 해 놓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풀장의 경계가 낭떠러지처럼 보이는 구조다. 그와 루이사는, 낭떠러지 같은 수영장 가장자리의 담에 팔을 걸고 매달려 이야기를 나눈다. 낭떠러지 같지만 담 바깥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담 내부의 물은 수심이 깊어 팔과 얼굴만 턱걸이하듯 걸어놓고 몸 전체는 물에 잠겨서 안전하다. 그는 이런 낭떠러지 같은 수영장이 어떤 구조인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해소된다.
루이사가 말한 Pool Party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수영장에서 노는 것이다. 그와 루이사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많은 일을 했노라 답했고, 루이사는 일을 딱 하나 했다고 답한다. 루이사가 한 일은, 여객선 같은 배의 크루(선원)로 탑승해서 몇 달간 배에서 지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유니폼도 입는 등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가 승선을 고려한 어선과는 분명 다른 일이었을 터다. 루이사는, 파라솔 아래의 무리가 함께 일했던 배의 크루들이며 남자 친구도 배에서 만났다고 한다. 여객선의 밤바다 한가운데에서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해당 주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루이사는 브리즈번에서는 약간 앳된 티가 났지만, 10개월이 지난 현재에는 성숙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의 주된 원인은 바로 영어다. 루이사는 독일인으로, 브리즈번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영어가 상당히 미숙했으며 그가 더 나았다. 하지만 현재의 루이사는 영어를 거의 원어민에 가깝게 구사한다. 그는 루이사의 영어를 들으며 상당히 놀랍고, 부러우면서도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여러 일을 하고,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간신히 지금의 영어를 터득했다. 그럼에도 그의 영어는 동양인 특유의 발음과 문법, 억양을 떼어내지 못한다. 반면 루이사는, 독일인이어서인지 영어 실력에 탄력이 붙자마자 실력이 수직 상승했다. 그가 10개월 동안 갖은 경험을 하며 간신히 배운 영어보다, 루이사가 한 가지 일을 하며 배운 영어가 더 뛰어나다. 그는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루이사의 영어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축하한다.
루이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백패커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루이사와 흑인 남자 친구는 조금 더 놀다 가지 그러냐며 아쉬움을 표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말한다. 루이사는 그에게, 자신이 케언즈로 이동을 생각하고 있다 말한다. 파라솔 아래 무리 중 몇몇과 같이 갈 생각이라며, 그에게도 생각이 있으면 동참하라고 말한다. 그가 차가 있느냐고 물으니, 차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그는 알겠다고 말한다.
피라미드 같은 카지노 건물을 지나, 그는 다시 40분을 걸어 다윈 도심으로 향한다. 그는 몇 시간 전에 했던 자신의 근거 없는 망상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 그렇지, 그럴 리가 있나' 하고 생각한다. 또한, NBA 농구 선수 같던 흑인 남성의 모습이 계속 머리속에서 맴돈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 - Cairns (0) | 2021.10.24 |
---|---|
229 - 케언즈행 국내선 (0) | 2021.10.24 |
227 - 뜻밖의 인연 (0) | 2021.10.22 |
226 - Aborigine과의 만남 (0) | 2021.10.22 |
225 - Rainy Season Maker (0) | 2021.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