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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36 - 워킹, 홀리데이

 세차장 일을 그만둔다. 그는 자신의 실수가 계속해서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다. 세차 일을 하면서 비자 만료까지 버티려던 그의 소박한 희망이 물거품으로 변한다. 그는 세차를 그만두며, 워킹홀리데이 생활 초반에도 그랬지만 끝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계획대로 되게끔 놔두질 않는구나 생각한다.

 

 

 케언즈는 원체 도시가 작아 상점도 많지 않다. 검트리를 통해 올라오는 공고를 보면, 케언즈 시내가 아니라 외곽 지역이다. 그는 차가 없고, 케언즈는 대중교통이 미비하니 외곽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고가 적기도 하지만, 그의 비자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1달 뒤 비자가 만료되는 워홀러를 고용할 리가 만무하다. 세차장 일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이틀 정도 도서관에 가서 공고를 찾아보다가, 결국 포기한다.

 

 

 표면적으로 그가 구직을 포기한 이유는 두 가지, 케언즈의 얼마 안 되는 일자리와 만료까지 얼마 남지 않아 고용에 불리한 비자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그의 내면에도 구직을 단념하게끔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자책감이다. 그는 무얼 해보겠다고 열심히 나대다가 세차장에서 사고를 냈다. 이후 그가 책임을 지겠다고 한 행동이 1000불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세차장 일을 그만둔 뒤로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 어떻게 했으면 사고를 내지 않았을까, 어떻게 했으면 1000불을 빼앗기지 않았을까, 정말로 그가 책임지겠다고 한 행동은 바보 같은 행동이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되뇐다. 변하는 것은 없고 쓸모없는 짓이었지만, 그의 뇌는 치열하리만치 당시의 기억을 되새긴다. 그에게는 충격과 자책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어딘가에서 다시 일을 구할 상태가 아니다. 그가 자책감에서 벗어나 사고 당시의 기억 재생을 멈추기까지는 2주가 넘게 걸린다.

 

 매니저는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았고, 일한 돈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세차장에서 일주일 동안 무료 봉사를 한 셈이다. 다행히도 세차장에서 일하는 동안 개인 시간이 없어서, 추가로 돈을 쓰진 않았다. 그는 원래 계획한 예산대로,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한 번에 때우는 생활을 이어나간다.

 

 

 비자 만료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일을 구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그 자신도 일할 생각이 없다. 그야말로 완벽한 '홀리데이' 기간이 된 것이다. 그는 문득, 자신의 호주 생활이 비자 이름처럼 Working과 Holiday를 번갈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리즈번에서 6개월간 키친핸드, 청소, 공장 - 첫 번째 Working 기간

 브리즈번에서 멜버른까지 혼자 로드 트립 - 첫 번째 Holiday 기간

 멜버른에서 2개월간 건설현장, 웨이터 - 두 번째 Working 기간

 멜버른에서 일주일 넘게 가족 여행 - 두 번째 Holiday 기간 

 가족들이 돌아간 뒤, 1개월간 에어컨 - 세 번째 Working 기간

 멜버른에서 다윈까지 20일간 로드트립 - 세 번째 Holiday 기간

 세차하다가 사고로 그만둠 - 네 번째 Working 기간으로 전환하려다 실패

 

 그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이름과 뜻, 취지에 충실한 워홀러다. 3번의 Working 기간, 3번의 Holiday 기간을 경험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워킹홀리데이 마지막 기간을 Working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바램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세 번째 Holiday가 강제로 연장돼서, 비자 만료까지 한 달 더 쭉 쉬게 된다. 워킹 - 홀리데이 - 워킹으로 끝내려는 계획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비자 이름처럼 워킹 - 홀리데이로 끝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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