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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39 - 일본인 유학생들

 사토루를 포함해서, 케언즈에는 일본인이 많다. 일본인 관광객도 많고, 일본인 워홀러도 많고, 일본인 유학생도 많다. 그는 케언즈에서, 일본에는 길거리에서 바베큐를 해 먹는 문화가 있음을 처음 알게 된다. 만화'짱구'에서도 벚꽃놀이 중 벚꽃 나무 아래에서 바베큐를 해 먹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호주는 길거리 곳곳, 특히 공원 이곳저곳에 바베큐용 전기 그릴이 설치되어 있다. 소시지, 고기, 채소 등을 가져오면 무료로 그릴을 이용해 구워 먹을 수 있다. 그가 케언즈에서 공놀이장을 오갈 때, 이런 식으로 바베큐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바베큐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일본인도 많다.

 

 

 사토루를 통해 일본 사람과의 대화법을 약간 터득한 그는, 괜히 심심할 때마다 바베큐를 하고 있는 일본인 무리에게 말을 걸곤 한다.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비슷한 외모, 한국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본인들은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는 K-POP 아이돌, 한류 문화가 이렇게 일본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지 처음 체감한다.

 

 대화는 영어로 한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는 일본어가 많지만, 그가 아는 일본어는 일상 대화용이 아니다.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 아주 가끔 일본어를 쓰면, 무리 중 어떤 일본인이 조심스럽게 그의 일본어를 교정한다. 그는 일본인들과 대화하며, 일본어가 이렇게 어려운 지 처음 알았다.

 

 

 그가 영어의 S와 C를 'ㅅ'으로, L과 R을 'ㄹ'로 잘못 인식했던 것처럼 그의 일본어에도 오류가 있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ㅈ과 z 소리, 두 번째는 tsu 발음이다.

 일본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려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그는 이 간단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부터 틀린다. 그는, 한국어로 쓰인 그대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로 발음한다. 고자이마스 부분을 '자' 아니면 '쟈'로 발음했는데, 이는 틀린 발음이다. 일본인들이 제대로 구사하는 발음은, '자'나 '쟈'가 아닌 'zㅏ'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는, 의식적으로 z로 발음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하지만 타치츠테토의 가운데 츠, 'tsu' 발음만큼은 도저히 해결이 되질 않는다. 그는 고등학교 일본어 시간에 일본어를 배운 적 있다. 아이우에오, 카키쿠케코, 타치츠테토로 배웠다. 그래서 그는 tsu를 츠나 쯔로 발음했는데, 이 또한 틀린 발음이다. 일본인들이 발음하는 tsu는, '쯔'도 '츠'도 '츄'도 아닌 중간 발음이다. 일본인들은 그에게 입 모양과 혀의 위치까지 알려주며 세세히 알려주지만, 따라하기가 힘들다. 혀가 붙었다가 떨어질 때 터져 나오는 바람 소리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독일의 움라우트 발음처럼, 일본의 tsu 발음은 한국어에 없는 발음이다.

 

 예의 바르고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상, 일본인들은 외국인이 일본어를 조금만 말해도 잘한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국인들의 발음을 모두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아리가토 고이마스'나 '케모노'를 듣는 순간 단박에 한국인임을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오랜 기간 해당 국가의 언어를 연습하면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발음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인도 그렇고 일본어도 그렇고, 그는 자신이 일본을 전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대화를 할 때 백인들에게서도 느껴지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벽의 정체를 조금씩 실감한다.

 

 

 케언즈의 일본인들은, 대학교나 어학당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이들이 많다. 어학당의 프로그램에 따라 교실에서도 수업하고, 바깥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영어와 영어권 문화를 모두 익히는 것이다. 그가 만나는 바베큐장의 일본인들도 대부분 어학당에 다니는 이들이다.

 

 그가 어학당의 일본인들과 이야기하던 중, 누군가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왜 벌을 받았냐고 물으니, 수업 시간에 일본어를 써서 벌을 받았다고 한다. 쏟아지는 의문을 억누르며, 무슨 벌을 받았냐고 묻는다. 해당 일본인은 쉬는 시간, 교실 칠판에 영어로 '수업 시간에 일본어를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수십 번 쓰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며 그는, 심슨 가족의 아들 바트 심슨이 사고를 치고 똑같은 벌을 받던 모습이 떠오르고, 교과서에서나 봤던 한국의 식민지 시절 한국어 말살 정책이 떠오른다.

 

 그는 일본인의 벌 받은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외국인이 자국의 말을 쓴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 물론 어학당이니, 영어 습득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한 의도라는 점은 알겠다. 하지만 깜지라니, 어학당에 다니는 이들은 다들 성인이다. 그는 해당 어학당의 교육과 벌이, 너무나도 유치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자국 언어를 억압하면 영어 습득에 더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며, 그렇게까지 해가며 영어를 습득해야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어학당의 이러한 조치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어학당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미지가 대단히 나빠진다. 하지만 눈앞의 일본인들은, 벌 받을 만했다는 것처럼 별 일 아닌 듯 말한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해당 조치가 부당하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일본인들과의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ANZAC Day'(안작 데이) 관련 에피소드다. ANZAC, Australian & New Zealand Army Corps의 약자다. 즉 ANZAC은 호주-뉴질랜드 합동군이라는 뜻이며, 안작 데이는 한국의 현충일처럼 군인들을 기리는 날이다.

 

 그는 케언즈에서 또 다른 일본인 유학생들을 만난다. 유학생들은, 오늘 어학당이 ANZAC day 관련해서 파티를 열어 빨리 끝났다며, 자신들도 ANZAC day를 축하하기 위해 바베큐 파티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유학생들에게 ANZAC day가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일본인 유학생들은 모른다고 답한다.

 

 그는 역사에 매몰될 필요는 없지만, 알아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ANZAC day가 기리는 호주-뉴질랜드 합동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측이었으므로, 추축국 측인 일본의 적이었다. 일본군은 호주 본토인 다윈을 폭격했고, 호주군도 뉴기니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 호주와 일본 사이에 대대적인 전면전이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대국 관계였음은 사실이다. 그는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일본인 유학생들이 ANZAC day를 기념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일본에 간 한국인 유학생들이 신사 참배를 기념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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