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보증금이 없긴 하지만, 백패커스의 하루 숙박비는 쉐어하우스에 비해 비싼 편이다. 그는 돈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싼 값의 주거 시설을 찾아다닌다. 케언즈에서 지내는 한 달여 동안 그는 4곳의 숙소를 돌아다닌다. 물론, 단기간 잠시 지내다가 다시 백패커스로 돌아온다.
4곳의 숙소 중, 두 곳은 한인 쉐어하우스였다. 인구 밀도가 적은 케언즈의 특성상 주거 환경은 대도시에 비해 더 좋은데 방세는 오히려 싸다. 화창한 날씨, 소도시의 인심까지 더해져 그가 케언즈에서 만난 한인 쉐어하우스의 마스터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그는 한인 쉐어하우스 마스터에게,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았고 돈이 얼마 없으니 보증금을 감해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마스터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조건이 있다. 그의 형편을 고려해서, 보증금 없고 세도 깎아서 빈 방에서 지내게 해 주겠다. 하지만 마스터 본인도 이익을 남겨야 하니, 그가 지내는 방에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구해지면 나가 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그렇게 한인 쉐어하우스에 입주한다. 한국인 3명이 사는 집이었는데, 마스터는 같이 살지 않는다. 마스터는 케언즈에 자리 잡은 한국인으로,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일 것으로 추측된다. 마스터는 케언즈 근교 지역에 초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초밥집이 마스터의 주요 수입이다. 마스터의 집에 사는 쉐어메이트들은, 마스터가 본인의 초밥집에서 일을 시켜주고 시급도 20불씩 준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선한 집주인이다.
마스터는 돈을 많이 벌었는지, 케언즈에서 집 여러 채를 쉐어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마스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쉐어하우스에 들러 청소만 해준다. 청소를 해주러 방문할 때마다 쉐어메이트들은 감사를 표한다. 마스터는 돈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을 쥐어짤 필요가 없고, 그렇기에 세입자들과 갈등이 없다. 그에게 제안을 할 때도, 자신은 세입자들에게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20대 새로운 워홀러들과의 만남이 즐거워서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터가 운영하는 쉐어하우스 전부가 마스터 소유는 아니겠지만, 그가 살았던 쉐어하우스는 마스터 소유의 집인 듯하다.
한없이 선량한 한인 마스터와의 인연도, 제대로 보증금과 방값을 지불하겠다는 여성 워홀러가 나타나면서 끝이 난다. 남성이었으면 방을 함께 쓰겠지만, 여성 워홀러이기 때문에 그가 방을 같이 쓸 수 없다. 마스터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을 빼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원래부터 마스터가 호의를 베풀어서 그가 입주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그는 마스터의 부탁에 당장 방을 뺀다. 그리고 다시 아침 식사를 제공해주는 백패커스로 돌아간다.
약 1주일 정도 지속됐던 마스터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만, 일주일 동안 안면이 트인 한인 쉐어메이트들과는 연락이 지속된다. 그가 1주일 동안 쉐어하우스에서 친해진 한인 워홀러는 두 명이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인을 멀리했다. 특히나 브리즈번에서는 한인들과 신나게 싸웠다. 하지만 에어컨 일을 하며 잊었던 한국인의 정을 느꼈다. 또 로드 트립 기간 동안 계속해서 백인들 틈에서 지내면서, 그는 어떠한 외로움을 느꼈다. 한국인들을 기피했던 주된 이유는 영어 실력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로드 트립 동안 영어가 비약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이제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다. 마지막 기간에 한국인들과 좀 지낸다고 해서, 그간 쌓아 올린 영어가 한순간에 무너지진 않을 터다. 또 그 자신이 결코 그렇게 되게 놔두지 않는다.
그와 친해진 두 명의 한국인은 20대 워홀러다. 그를 포함해 다들 나이에 상관없이 말을 놓지 않는다. 두 워홀러는 평범한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낮에는 케언즈 주변 초밥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외국 음식을 먹고 수영장을 가는 등 그야말로 호주를 즐긴다. 그는 워킹홀리데이에서 뭐라도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바쁘게 지냈지만, 새로 사귄 두 한국인 워홀러들은 워킹홀리데이에 그리 절박하지 않으며 돈을 모을 생각도 없다. 그저 호주 생활과 약간의 여행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돈만 벌어서 즐겁게 놀뿐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굳이 1년을 채우지 않고 6개월 정도 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한다.
워홀 초창기의, 목표 달성을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고 한국인들을 피하던 때의 그였다면, 이 둘과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 그는 자신이 초창기에 설정했던 목표를 이미 대부분 달성한 상태이며, 자신의 실수로 인해 세차장 일을 그만두면서 자존감이 하락하고 위축된 상태다.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오다가 막판에 넘어져 어디든 의지할 곳이 필요한 상태다.
어차피 남은 1달 동안 일도 하지 않고 쉴 텐데, 그동안은 이 한국인들과 잠시 어울려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어쩔 수 없는 상황, 자포자기와 너그러움으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인간관계는 정말 예측할 수 없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관계였지만, 막상 함께 있다 보니 말이 잘 통하고 마음도 잘 맞는다. 그는 두 한국인 워홀러가 근교로 놀러가자고 하면 없는 돈을 쥐어짜 내서라도 따라간다. 결과적으로 두 한국인 워홀러와 함께 다닌 때가, 공놀이와 더불어 그의 무료한 케언즈 시절을 즐겁게 해 준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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