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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43 - 맨발의 청춘, 아침 식사

 그는 케언즈에서 보내는 마지막 한 달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한다. 바로 자연인 흉내내기다. 호주인들, 특히 호주인 남성들 중에는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그는 이러한 모습이 자연친화적이고 나름 멋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비자는 한 달이고, 하는 일도 없고,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그는 신발을 신지 않고 자연인 흉내를 낸다.

 

 해변가를 산책할 때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신발을 잠시 벗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케언즈는 해변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이므로, 일반 관광객 중에서도 맨발로 다니는 이들이 있다. 그는 자신이 진정한 로컬이자 자연인이 된 것이라 생각하며 점점 신발을 안 신고 다닌다. 다행히도, 케언즈의 도로와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 같은 것이 거의 없어 그는 발을 다친 적이 없다.

 

 

 맨발에 익숙해지자, 그는 좀 더 과감해진다. 이번에는 웃통을 벗을 계획이다. 케언즈의 날씨는 덥고, 그가 케언즈에서 향하는 곳은 언제나 바닷가 쪽의 인공 수영장과 공놀이장이다. 실제로 공놀이장에도, 수영이나 비치 발리볼을 즐기던 복장 그대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상의를 아예 입지 않아 온몸이 구릿빛이다.

 

 그는 이러한 관광객들에게서 느껴지는 바다 느낌을 따라 하고자 한다. 신발도 벗고, 조금 부끄럽지만 상의도 벗는다. 하지만 상의 탈의는 신발을 벗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고, 개인적으로 그의 취향에 별로 부합하지 않는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이나 물에 들어갈 생각이 확실히 서면 상의를 탈의하고 돌아다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상의를 입는다. 그가 가진 상의라고 해봐야, 검은색 반팔 면티와 하얀색 반팔 면티가 전부다. 그는 특히 공놀이를 할 때는, 상대방이 웃통을 벗더라도 자신은 반드시 상의를 입는다. 공놀이를 할 때 웃통을 벗는 이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놀다가 온 뉴비들이다. 공놀이가 목적인 이들은 상의를 탈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빨래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동전 값을 아끼기 위해 그는 외출할 때 입는 옷을 최대한 줄인다. 상의는 두세 개의 같은 반팔 티를 번갈아 입고, 하의는 속옷과 바지를 겸하는 다기능 수영복 하나로 해결한다. 공놀이를 하고 나면 땀이 나서 상의는 세탁을 해야하지만, 하체에 입은 수영복은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 공놀이가 끝난 뒤 인공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인공 수영장 물도 깨끗하진 않겠지만, 그는 왠지 인공 수영장에서 수영하면 공놀이를 하며 났던 땀이 씻겨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말 그대로 자연인이다.

 

 

 그가 입는 의복처럼, 그의 식사도 꾸밈없고 거침없다. 그는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공짜 아침 식사를 최대한 많이 먹는다. 아침을 많이 먹어 점심 식사까지 겸하려는 목적에서다.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아침 메뉴는 정해져 있다. 백패커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구워주는 팬케잌,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씨리얼, 무미한 요거트, 식빵, 각종 잼, 우유다. 이중 팬케잌의 인기가 압도적이며, 정해진 아침 식사 시간에 가지 않으면 남은 음식들을 모두 치워버린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에 참여한다.

 

 매일같이, 그리고 많은 양을 먹다 보니 그는 제공되는 아침 식사 메뉴들을 더 맛있게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유에 시리얼을 넣고, 식빵과 팬케잌에 잼을 올려 먹었다. 시리얼은 단 맛이 아예 없어서 우유에 불은 수제비를 먹는 것 같고, 반대로 식빵과 팬케잌은 잼 때문에 지나치게 달다. 그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여느 날처럼, 그는 아침 식사를 먹으러 백패커스 로비로 향한다. 아직 사람들이 없어 한산한데, 팬케이크를 굽는 백패커스 직원이 요거트에 딸기잼을 섞고 있다. 이곳의 요거트는 시리얼처럼 설탕이 무첨가 된 밍밍한 요거트다. 백패커스 직원이 요거트에 딸기잼을 섞자, 색깔이 먹음직스러운 딸기 요거트로 변한다. 그가 한 입 먹어봐도 되냐고 묻고 먹어보니, 한국에서 파는 것 같은 달콤한 딸기 요거트다. 그는 유레카를 외친다.

 

 딸기 요거트 제조법을 발견한 이후, 그는 매일 아침 딸기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다. 밍밍하고 무미한 요거트에 딸기 잼을 섞으면, 당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그만의 딸기 요거트가 완성된다. 이 딸기 요거트에 시리얼을 넣어본다. 꾸덕꾸덕한 요거트에 시리얼이 붙어서 따라온다.

 

 

 며칠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는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그에게 최적화된 식사로 새롭게 조합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우유를 마시는 기다란 컵에, 다량의 요거트와 약간의 딸기 잼을 섞는다. 그리고 그 속에 씨리얼을 부어, 컵째로 요거트-딸기잼-씨리얼을 떠먹는다. 요거트-딸기잼-씨리얼만 해도 대단한 조합인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팬케잌에, 요거트-딸기잼-씨리얼을 한 숟갈 떠서 펴 바른 뒤 팬케잌을 반으로 접어 한 입 베어 문다. 약간은 심심한 듯한 팬케잌에, 적당한 달달함과 씨리얼의 바삭한 식감, 요거트의 풍미가 어우러지면서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그는 자신의 조합법이, 이곳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가장 완성된 형태로 먹을 수 있는 조합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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