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청춘이니, 자연인이니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만 결국 그는 돈 없는 백수 워홀러다. 공놀이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한국인 워홀러 친구들과 약속이 생기면 만나러 가고, 이외에는 케언즈 바닷가를 산책하며 그저 시간을 보낸다. 돈이 없어 기념품 쇼핑은 물론 빨래 비용까지 아낀다. 식사도 점심은 거르고, 백패커스에서 제공하는 무료 아침과 저녁 늦은 시간 마감 세일을 하는 뷔페를 기다렸다가 먹는다. 그나마 뷔페에서도 미친 듯이 쓸어 담으며 집어먹다가 사장에게 한 소리 들었다. 어찌 보면 궁상맞기까지 하다. 그는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호주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의미 부여를 좋아하고 고집이 세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워킹홀리데이 1년의 기간을 끝까지 다 채우고 만료 날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지막 날까지 버티다가 가는 것이, 자신의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일종의 의리이자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세차장 일을 자신의 실수로 그만두고 통장 잔고를 보았던 그 순간, 슬픈 생각이 들었다. 비자 만료 날까지 버틸 것은 자명하다. 이 점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돈벌이가 불가능할 테고 통장의 돈도 별로 없으니, 남은 한 달의 기간이 물질적으로 썩 여유롭진 않을 것이다. 그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워킹홀리데이의 끝을, 마지막 순간 실수로 인해 일이 떨어졌다고 도망치듯 빠르게 귀국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세차장 일을 그만둘 때부터, 이러한 식의 생활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가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되는 마지막 날까지 버티려는 숨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는 한국에 귀국하기 전, 일종의 유예기간을 둔 감이 없지 않다. 그가 버티는 두 번째 이유다.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호주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리가 만무하다. 그로서는 최대한 워킹홀리데이 때의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복학부터 해야 하고 빨리 졸업도 해야 한다. 대학교 수업과 취업 준비는 워킹홀리데이 생활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1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워킹홀리데이 1년 동안의 생활에 상당히 몰입해 있는 상태다. 무턱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간, 급격한 변화에 오히려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케언즈에서 보내는 마지막 한 달은, 그가 한국에서의 상황을 그려보고 심적 충격을 대비하는 일종의 유예 기간, 준비 기간이자 적응 기간인 셈이다. 어쩌면 그는 한국에 돌아가서 자신이 마주하게 될 현실이, 그리 녹록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때 이미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적 대비와 유예 기간이라고 위안 삼으며, 단순히 한국으로의 귀국을 한 달이나마 뒤로 미룬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위의 두 가지 이유가 혼합되어서, 그는 케언즈에서 자신의 워홀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한 달여를 버틴다.
1) 마지막까지 버티며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의리이자 예의를 지킨다.
2) 귀국 후 한국에서의 생활과 변화를 어림짐작하며, 잠시나마 심적 준비와 유예 기간을 가진다.
적어도 그 자신은, 두 가지 중 첫 번째 이유가 더 주된 이유라고 생각했다. 버티고 버텨서 1년이라는 기간을 전부 채우는 순간, 자신의 워킹홀리데이가 비로소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던, 단순히 귀국을 미루고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었던 마지막 한 달여의 시간은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 그는 자신의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의리이자 예의를 지킴과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유예 기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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