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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48 - 아웃백에서 만난 캥거루

 그는 자신의 워킹홀리데이를 되돌아본다.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검색하고 비자가 승인됐을 때의 조그만 성취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비자지만 그는 생전 처음 그러한 성취감을 느꼈다. 생전 처음 느낀 생생한 성취감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홀로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공항에서 그 비행기를 탔을 때, booking.com으로 숙소를 예약했을 때, 호주에 도착해서 대중교통을 타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숙소에 체크인을 했을 때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관공서 한 번 가보지 않았던 그가 난생처음 외국인과 이야기하며 은행 계좌를 개설했을 때, 핸드폰 유심을 받아 핸드폰을 개통했을 때, 공공 도서관에서 카드를 만들어서 마침내 이력서를 출력하는 데 성공했을 때, 이력서 뭉치를 들고 직접 상점에 들어가 떨리는 목소리와 더듬거리는 영어로 간신히 이력서를 건네줬을 때 등등, 호주에서는 그가 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잊을 수 없는 성취였다.

 

 이러한 조그만 성취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의 사고를 형성한다. '마음먹고 찾아보고, 직접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런 성취감과 자신감이 발판이 되어, 한국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자동차를 구매해서 혼자 로드 트립까지 했다. 조그마한 성취감이 쌓일수록 그는 더 큰 것, 더 어려운 것에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낯설고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들도, 찾아보고 알아볼수록 못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결국에는 성취했다. 또한 신기하게도, 그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계획하면 언제나 도움이 되는 사건이나 사람들이 있었다. 이력서를 돌리며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고용주들을 찾아다녔을 때,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일정을 공유할 사람들을 찾아다녔을 때 그는 함께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인복과 운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오히려 운이 좋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가 자신의 워킹홀리데이를 돌아보았을 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황도 여럿 있었다. 당시에는 당찬 패기, 패기라기보다는 치기 어린 자신감으로 밀어붙였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굉장히 위험했던 상황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몸을 심하게 다쳤거나 사기를 당했을 수도 있다. 그는 무모하리만치 덤벼들었지만 다행히도 상황은 악화되지 않았으며, 후폭풍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됐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그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중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처음 일을 줬던 톰, 낀, 레너드, 필립과 공장 사람들, 그에게 차를 판매한 페르시아 차주, 다투긴 했지만 보증금은 모두 돌려준 쉐어하우스 마스터들, 쉐어메이트들, 청소 매니저, 이벤트 청소 워홀러들, 로드 트립을 버텨준 그의 캠리, 건설 일에서 만난 조쉬, 데이빗, 철판요리 레스토랑의 남사장 여사장과 쉐프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 동료들, 에어컨 인부들과 한국인 매니저, 로드트립 Travelmate들, 세차장 동료들과 매니저, 함께 농구한 삼총사, 한국인 워홀러 친구들, 이외에도 워킹홀리데이 중 직/간접적으로 만났던 사람들까지 모두들 그의 워킹홀리데이를 다채롭게 해주었다. 맨몸으로 무작정 건너와 맨 땅에 헤딩 식으로 들이댄 그조차도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준 호주다. 호주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돌아보며, 마침내 그는 그토록 학수고대했던 캥거루와 마주한다. 그와 마주한 캥거루의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 그가 머릿속에서 그렸던 상상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캥거루를 찾아 호주에 왔다. 그는 주변인들과 각종 매체로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자신의 상상력과 바램을 더해 자신만의 캥거루를 그렸다.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멋있고, 푸근하고, 편안하고, 걱정 하나 없고, 마냥 자유로울 줄 알았다. 아주 틀린 상상은 아니지만, 그가 마주한 캥거루는 다른 이면도 갖고 있다. 춥고, 배고프고, 고독하고, 돈이 없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때로는 부당한 조치에 다투고, 피곤할 정도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앞날을 계획해야 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내린 결정이더라도 이에 대한 결과와 책임을 가혹하리만치 오롯이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이면을 마주하고 감내한 시간이 있었기에, 또 꿈꿨던 이상과는 상당히 달랐기에, 오히려 그는 자신이 마주한 캥거루에게 더욱 애착이 간다.

 

 아웃백에서 만난 캥거루는 그에게,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생각도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캥거루를 다시 직접 마주할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캥거루는 언제 어디서나 그와 함께할 것이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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