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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49 - 마지막 날

 그는 귀국행 비행기를 예매한다. 뉴질랜드도 필요 없다. 원래 대부분의 호주 워홀러들은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끝나면 뉴질랜드에 들렀다가 한국으로 귀국한다. 뉴질랜드는 호주 바로 옆에 위치해있어, 한국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귀국 후에 따로 방문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기왕 호주에 온 김에 뉴질랜드까지 들러서 여행하고 귀국하는 것이다.

 

 그는 뉴질랜드를 여행할 돈이 없다. 돈은 억지로라도 마련할 수 있지만, 뉴질랜드를 여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그가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표면적인 이유는, 현지에서 동화되는 진정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호주 전역을 돌아다면서 여행을 많이 했다. 즉, 그는 이미 여행을 충분히 했으며 더 이상의 여행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는 언젠가, 호주를 다시 방문할 때 함께 방문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뉴질랜드는 물론, 세계일주의 꿈도 접어둔다.

 

 

 그는 케언즈에서의 마지막 1주일을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보내고 있었지만, 막판에 백패커스로 다시 옮겼다. 쉐어하우스에 계속 머물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워킹홀리데이를 백패커스에서 끝마치고 싶었다. 처음 시작이 브리즈번의 백패커스였던 것처럼, 마지막도 백패커스로 끝내고 싶었다.

 

 마침내, 그의 비자 만료일이 밝는다. 워킹홀리데이 마지막 날이다. 그는 아침 일찍 백패커스에서 일어난다. 공기가 신선하고 햇볕이 화창하다. 공짜 아침 식사를 먹으러 로비로 나간다. 기다란 우유 컵에, 자신의 제조법대로 요거트-딸기잼-씨리얼을 넣고 섞는다. 잘 섞여서 완성되자, 팬케잌에 발라서 먹는다. 그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다고 생각한다.

 

 짐은 전날 밤 모두 싸놨다. 배낭, 쎅, 캐리어가 전부다. 짐들을 가지고 카운터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한다. 그는 이 백패커스에 벌써 서너 번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했기 때문에 직원들과 친하다. 직원들은 또 체크아웃을 하느냐고 묻고, 그는 이번에는 정말로 떠나는 것이라 말한다. 초록색 개구리 같은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은, 그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든다.

 

 

 케언즈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항까지는 백패커스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탄다. 백패커스 앞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니 셔틀이 도착한다. 올 때 탔던 셔틀버스는 조그만 승합차였는데, 오늘 타는 셔틀은 버스다. 어릴 적 태권도 학원을 다녔을 때 탔을 법한 크기의 조그만 버스다. 그는 짐을 모두 들고, 출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자리에 앉는다.

 

 버스가 출발한다. 한 달 동안 몇 번이고 시간을 보내며 걸었던 케언즈의 산책로와 시장을 지난다. 그를 배웅하는 사람은 없다. 그를 배웅할 사람도 없고, 그도 배웅을 원치 않는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마지막 날을 상상할 때마다, 평상시처럼 덤덤하게 떠나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날인 지금 그는 실제로 자신이 꿈꿨던 모습 그대로, 평상시 주거지를 옮길 때처럼 덤덤하게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그의 머리로 느끼는 감정은 덤덤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은 쿵쿵 뛴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 무게를 잰다. 혹시나 무게가 초과될까 내심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초과되지 않는다. 캐리어와 배낭이 모두 10여 kg인데, 배낭이 캐리어보다 더 무겁다.

 

 비행기 시간까지 잠시 기다린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호주에서의 마지막 음식을 먹는다. 공항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은, 당연히 Hungry Jacks다. 그동안은 돈을 아끼느라 거의 먹지 못했지만, 마지막 날이니 돈을 아낄 필요가 없다. 그는 Hungry Jacks를 먹으며, 이제 비행기를 타면 Hungry Jacks와도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시간이 됐다. 그는 조그만 까만 쎅을 앞으로 메고, 뒤에는 커다란 배낭을 멨으며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끈다. 비행기 번호와 출구 번호를 확인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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