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린다. 그는 꼬박 1년 만의 한국이니, 뭔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예전에는 너무 익숙해서 알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보니 새로이 느껴지는 한국 공기만의 달콤함 등을 상상했지만 그런 것은 없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그는 공항 도착장으로 나온다. 인천 공항은 해외 이용객들도 많으니, 영어가 많이 쓰여 있어 한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진 않는다. 하지만 수속을 마치고 나갈수록, 익숙한 인천 공항 풍경이 보이고 한글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공항 한복판에 서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호주에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을 매일 마주치며 살았던 그다. 인천 공항의, 검은 머리 일색의 풍경이 왠지 낯설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호주와 비교해서 받았던 인상은, 단조롭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외국인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다문화 국가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 황인종의 한국인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단조로움과 약간의 지루함도 느낀다. 가끔씩 외국인들을 보면, 그는 제2의 고향인 호주의 친구라도 본 것처럼 반갑다. 하지만 한국의 외국인들은 호주의 외국인들과 다르다. 그가 호주에서처럼 무턱대고 영어로 인사하자, 외국인들은 놀라서 그를 바라본다. 한국의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에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호주와 다르다. 길거리에서 갑작스럽게 How are you / How's your day라고 인사하는 문화가 아니다. 약간 겁내는 듯한,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눈빛을 보고 그는 이내 한국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동화된다. 이후로는 외국인을 보더라도, 그는 속으로만 반가워하고 말을 걸지 않는다.
그는 호주에서 고작 1년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워낙 몰입해서인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다. 오랜만에 귀국한 감회는 형용하기 힘들다. 마치, 군대를 전역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드디어 자신이 돌아왔다며, 모든 것이 반갑고 또 모든 것이 그를 반겨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없다. 한국은 그 없이도 쌩쌩 잘 돌아가고 있다. 한없이 반가운 인사를 건넸지만 무시당한 것처럼 무안한 기분이다.
그는 자신의 고국이자 터전인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한국에서 나고자란 한국인이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지내던 외국인 노동자에 비한다면 여건이 훨씬 좋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하는 등 해야 할 것이 많다. 잠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으니, 그는 뒤쳐졌고 또래의 친구들은 앞서있다. 하지만 그는 부럽지 않다.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남부럽지 않은 경험과 성과를 얻어왔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지침으로 삼을 중요한 경험을 많이 한 것이다. 지금부터 펼쳐질 한국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을 터다. 그래도 호주에서 배고픔을 참고 좁은 숙소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던 워킹홀리데이 때보다, 적어도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더 열악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워킹홀리데이 시절 생활했던 것과 동일한 정도로만 열심히 살아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1년 동안 떨어져 있던 집과 가족들에게 가는 버스다. 가족들과는 몇 달 전 멜버른에서 함께 가족여행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립다.
버스가 도착한다. 승객이 많지 않아, 그는 옆자리에 자신의 짐들을 올려놓는다. 집으로 가는 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새롭지만 낯설진 않다. 창밖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떠오르려 하지만 접어둔다. 우선은, 1년 내내 그가 혼자 깎느라 형용할 수 없는 스타일로 덥수룩해진 머리부터 깔끔하게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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