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업 준비

헬스장의 취준생

 그는 원래 운동을 좋아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원래 공놀이인데, 집 주변의 야외 코트에서 주로 공놀이를 하곤 했다. 야외 코트이다 보니, 겨울에는 눈이 오거나 코트가 얼어 공놀이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겨울에 헬스장을 등록했다. 그의 성향상 헬스는 별로 재미가 없다. 그는 실용적인 것을 동경하는 성향이 강한데, 헬스는 실용적이라기보다는 모양새를 가꾸는 운동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스를 향한 그의 마인드가 이 모양이니, 헬스장에서 제대로 헬스를 할 리가 만무하다. 그는 헬스장에 가서 무거운 무게를 몇 번 후딱 들어올리고는 헬스를 끝낸다. 그에게 헬스장은 운동보다는, 샤워하는 맛이 더 쏠쏠하다. 어쨌든 오늘 운동을 하긴 했다는 소소한 자기위안을 곁들인 샤워는 꽤나 시원하다.

 

 

 취업준비생이 된지도 어느덧 6개월, 그는 운동을 가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가 좋아하는 공놀이를 가는 횟수가 특히 급감한다. 겨울이라 야외 코트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실상은 그의 심리적 요인이 더 컸다. 그가 공놀이 코트를 가면, 항상 밤 시간대가 사람도 많고 재밌다.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에는 직장이나, 학교 등 본인들의 업이 있다. 하루 동안 열심히 생활을 한 뒤, 저녁이 되어서야 취미 생활인 운동을 즐기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인 그는, 본인의 업이랄 것이 딱히 없다. 취업을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그는 따로 준비하는 것도 없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력서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 운동하러 나가는 것뿐이다. 초창기에는 괜찮았다. 다들 겪은 시기니까. 이렇게 조금 있다가 취업이 되겠지. 그런데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도 모르는 새에 그의 자존감이 조금씩 갉아먹히기 시작한다.

 

 그는 공놀이장에 오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어쩌다가 한 번씩 물어보면, 다들 무슨무슨 직장에 다니고 있다. 본업에 집중하면서도, 밤에는 취미 활동을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들이구나. 저 사람들에 비하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그는 공놀이 선수인가? 당연히 아니다. 공놀이가 본업이 아닌데, 따로 하는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본업에 집중하는 때에, 그는 하는 것도 없으면서 자신도 무언가 하는 척, 컴퓨터를 보며 서류를 날린다. 다른 사람들이 본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본인도 밤에 공놀이 코트에 가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것도 없으면서 본업이 있는 다른 사람들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느낌이 든 순간부터, 그는 조금씩 공놀이를 나가는 횟수를 줄이기 시작한다. 왠지, 그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공놀이를 가지 않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헬스장뿐이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남은 것이 헬스장뿐이다. 그는 헬스장을 점심 즈음 시간에 간다. 저녁에 가면, 역시나 본업을 끝내고 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넘치는 사람들로 인해, 헬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 그조차도 헬스장 이용이 불편하다. 또한 그는, 공놀이장에서처럼, 본업을 끝내고 나서 활기차게 취미 생활을 즐기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별로 보고 싶지가 않다.

 

 쓸데없는 자기비하, 자존감 하락으로 그는 점심시간에 헬스장을 이용한다. 하지만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점심시간에도, 그의 머리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헬스에 집중하지 않으니, 그는 기구를 이것저것 깔짝거리고 집중을 하지 못한다. 헬스에 집중하지 못하면, 슬금슬금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가 헬스장을 이용하는 점심 시간대에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 사람들을 보기 시작한다.

 

 

 그와 같은 시간대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다.

열심히 땀 흘려 운동하는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회원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본인들 운동을 하는 트레이너

연예인 지망생인지 무엇인지, 모자를 눌러쓰고 PT를 받는 수강생

인스타 샐럽인지, 딱 붙는 레깅스를 입고 항상 점심시간에 운동하러 오는 여성들

 

 위 유형의 사람들이, 점심이나 낮 시간 헬스장 이용객들이다. 넓고 텅 빈 헬스장 여기저기 퍼져서, 각자 기구 하나씩을 잡고 운동을 한다. 그는 헬스장이 마치 숲 같다고 느낀다. 헬스 기구라는 나무가 시야를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데, 저 구석에 가보면 나무 하나에 매달린 사람이 하나씩 있다. 그가 이용하는, 낮 시간대 헬스장의 풍경이다.

 

 

 그는, 본업을 끝내고 저녁 시간대 활기차게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그래서 낮으로 옮겼는데, 이제는 낮에 사람들을 보는 것도 불편하다.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거의 없다. 낮에 헬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은퇴했거나 본업이 운동인 사람들이다. 그 자신 같은 젊은 2,30대 취업준비생은 하나도 없다.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본인들의 목표를 정해놓고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겠지. 아니, 이미 취업이 되어서 현업에 종사하며 이 사회의 기둥이 되어 있겠지. 근데 지금 자신은 혼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해가 중천인, 남들은 모두 자신들의 업을 영위하며 가치를 키워가고 있다. 그런데 그는 혼자, 본업도 아닌 헬스장에 우두커니 앉아 운동도 똑바로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죽이고 있다. 그는 낮 시간대 헬스장 이용객들을 보며,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낮 시간대에도 저녁 시간대에도, 언제 헬스장을 이용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업을 가지지도 않았고, 명확한 목표도 없고, 도대체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청년. 자신과 같은 부류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잉여 인간.

 

 그는 헬스장 가는 것을 관둔다. 헬스장 회원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 됐다. 헬스장도 가지 않고, 공놀이 코트도 가지 않으니 그는 점점 운동에서 멀어진다. 그는 이때를 돌이켜볼 때마다, 시간도 남아도는데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후회스럽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다시 그때의 감정을 돌이키면 도무지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운동을 당연히 해야 한다. 운동 흉내라도 내고, 정 운동이 안되면 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바깥의 다른 공간에 나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지했어야 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면야 그렇다. 하지만 그의 자존감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스스로를 고립시킬 만큼 꾸준히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