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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16번째 기업 (서류, 화상 면접(면담), 면접 준비)

 계속된 취업 준비 속에, 그는 조금은 지쳐 있는 상태다. 그가 원하는 제조업체 해외영업 직무는 죄다 서류를 탈락하고, 제약회사, 재무회계, 주류 영업 등만 간신히 붙어 면접을 봤다. 그런데, 근래에 그가 참석한 면접들은 모두 어딘가 개운치가 않다. 이런 면접으로 도대체 어떻게 지원자의 적격 여부를 가려내겠다는 것인지, 그는 도대체 왜 떨어졌는지, 어떻게 해야 붙을 수 있는지 뽑아낼 정보가 없다시피한 면접들의 향연이었다. 의미 없는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는 점점 힘이 빠진다.

 

 

 이렇게 힘이 빠져가던 차에, 그의 눈에 띄는 공고가 있었으니 바로 16번째 기업이다. 16번째 기업은, 로프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로프 제조업체다. 그가 좋아하는 실물을 만드는 기업인데, 마침 채용하는 직무도 해외영업이다. 그는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눈을 반짝이며 이력서를 작성한다.

 

  몇 백 번이고 지원을 하고 떨어지며 억지로나마 수정해서인지, 그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조악하게나마 다듬어진 상태다. 또한, 그의 이력서는 애초에 제조업체 해외영업을 1순위로 염두하고 작성했었다. 다행히도, 그는 16번째 기업으로부터 서류 합격 메일을 받는다.

 

 

 16번째 기업은, 실무진 면접에 앞서 화상 면접을 진행한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안내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면접이라기보다는 면담에 가깝다. 실무진 면접에 앞서, 제출받은 입사지원서의 간단한 검증 및 인재상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10분 내로 판단하는 절차라고 한다. 괜히 면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혼란스럽게만 했다. 그는 이력서에 거짓말을 써 놓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채용 절차의 한 단계이니, 실수가 없도록 준비하는 그다.

 

그는 안내받은 시간에 화상회의 툴인 Zoom을 켜놓고 대기한다. 그는 검은 맨투맨을 입은, 간단한 복장이다.

 

 

 

16번째 기업, 화상 면접(면담)

 

면접자 : 그 혼자

 

면접관(면담관) : 안경을 끼고, 얼굴이 타원형이며 살이 조금 있는 30대 중반 남자

 

 

  그 : 안녕하십니까!

  면담관 : 네, 안녕하세요. 잠시 화면 상태를 확인할게요. 잘 보이시나요?

  그 : 네, 잘 보입니다. 제 목소리가 잘 들리십니까?

  면담관 : 네, 잘 들립니다. 그럼, 화상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해주세요.

  그 : 네, 안녕하십니까, 16번째 기업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면담관 : 네, 오늘 자리는 면접에 앞서 사전 검증 단계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도 편안하게, 여쭤볼 것들을 좀 여쭤볼게요.

  그 : 네! 

 

 면담관은, 이후 약 7분간 그의 졸업 상태,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 확인, 사는 곳 등을 간단하게 묻는다. 이력서에 쓰여있는 내용과 간단하게 대조하여 일치 여부만 확인하는 듯하다. 그도 편안하게, 묻는 것에만 답을 한다. 그의 예상대로, 이름만 면접일 뿐 이는 간단한 면담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면담관 : 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하려 하는데요,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해주세요.

  그 : 아... 알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16번째 기업은 로프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 홈페이지에는 주로 합성수지 로프 위주로 소개되어있는데, 다른 로프도 취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바다를 건너는 커다란 현수교를 보곤 합니다. 그런 현수교에는 다리의 무게를 지탱하는, 굵은 쇠줄 여러 가닥을 꼬아서 만든 굵은 철제 로프들이 보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고 멋있어 보여서 눈여겨 보았습니다. 혹시 16번째 기업에서도, 현수교의 다리를 지탱하는 철제 로프도 취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면담관 : 아... 그 부분은... 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취급하긴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저희 회사의 주요 제품인 로프들은 합성수지나 섬유 로프입니다. 말씀하신 강철 로프들은, 주문량이 일시적이기 때문에 항상 생산하는 품목은 아닙니다. 가끔씩, 말씀하신 것처럼 현수교 공사 등을 할 경우에 해당 로프들의 주문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주문을 받으면, 공장에서 공정을 다르게 해서 생산해서 납품을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래서, 주기적이진 않지만 취급하고 있는 품목이긴 합니다. 답변이 됐을까요?

  그 : (눈을 반짝이며) 네, 감사합니다!

  면담관 : 네, 그러면, 이상으로 화상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 : 감사합니다!

 

 조그마한 모니터 속, 픽셀이 뭉개지는 화면 때문에 면담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면담관은 더욱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반적인 면담 분위기는 괜찮았으며, 특히 그는 마지막 질문을 통해 나름 어필을 했다고 생각한다.

 

 

 화상 면접(면담)이 끝난 바로 다음날, 16번째 기업은 그에게 화상 면접 합격 메일을 보낸다. 합격 메일에는, 대면으로 시행하는 1차 실무진 면접 일정이 안내되어 있다. 그의 예상대로, 마지막에 질문했을 때 어필이 제대로 먹혔나 보다. 그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산업 / 원하는 직무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기쁘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반드시 면접에 합격하리라 다짐한다.

 

 

 그는 여태껏 준비했던 기업들의 면접 자료를 모조리 꺼낸다. 10번을 훌쩍 넘는 면접 준비로 인해, 그의 면접 준비 자료는 꽤나 두텁다. 그는 각각의 면접 자료들 중, 준비가 가장 잘 된 자료들을 엄선해서 뽑아낸다. 그동안은 계속해서 억지로 열정이 있는 척 탈을 써야 했지만, 16번째 기업은 그가 정말로 가고 싶은 기업과 직무다. 그동안의 면접 자료들에서 좋은 점만을 뽑아내서, 최고의 면접 준비 자료를 다시 만드려는 것이다. 

 

 전부 정리하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열심히 준비했고 가장 상태가 좋은 자료는 1번째 기업 면접 준비 자료다. 1번째 기업도 그가 가장 가고자 하는 제조업체의, 해외영업 직무 면접이었다. 안타깝게도, 1번째 기업 이후 여태까지 면접을 본 곳은 어느 한 곳도 그가 가고자 하는 업계와 직무가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이 새삼 놀랍다.

 

 

 1번째 기업 면접 준비 자료를 기본 골자로, 그동안의 다른 회사 면접 준비에서 얻었던 노하우들도 섞어 그는 '최고의 면접 준비 자료'를 다시 갱신한다. 그의 갱신된 면접 자료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6번째 기업 기업분석]

 

    1. 연혁, CI

        표를 만들어 16번째 기업의 창업부터 분사, 공장 설립 등의 역사를 모조리 정리해 집어넣는다.

        회사 이름, 로고의 의미 정리

    2. 인재상

        회사 홈페이지에서 인재상을 그대로 베껴서 그의 언어로 다시 적는다.

    3. 채용 공고

        채용 공고를 다시 읽고, 베껴 적으면서 또 읽는다.

    4. 경영 목표

        1) 비전

        2) 경영방침

    5. 16번째 기업 형태

        16번째 기업은 특이하게도, 같은 이름을 공유한 두 개의 회사로 나뉘어진 상태다.

    6. 재무제표

        그는 16번째 기업의 재무제표를 모조리 출력해, 여러 차례 읽고 중요한 숫자는 따로 표를 만든다.

        1) 재무상태표 2개년도

            - 자산

                유동자산

                    현금및현금성자산

                    매출채권 및 유동금융자산

                비유동자산

                    유형자산

                    장기매출채권및기타비유동금융자산

            - 부채

                유동부채

                    매입채무및기타유동부채

                    단기차입금

                비유동부채

                    장기차입금

                    순확정급여부채

            - 자본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2) 손익계산서 2개년도

                매출액

                (매출원가)

                매출총이익

                (판매비와관리비)

                영업이익

                법인세비용차감전이익

                (법인세비용)

                당기순이익

 

                연구개발비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

 

            3) 현금흐름표 및 발행주식수

 

            기타) 공장 위치, 공장 생산실적, 공장 가동률 등

 

    7. 기업활동

        16번째 기업과 관련된 뉴스를 검색하여, 10년 전까지의 기사를 모조리 찾아보고는 중요하다 싶은 기사는 주소를 복사해서 면접 자료 워드 파일에 붙여넣는다. 링크 옆에는 해당 기사의 날짜 및 간략한 내용 요약을 써넣는다. 주로 16번째 기업이 어디서 투자를 받았다느니, 무슨 신제품을 개발했다느니, 기부를 했다느니 등의 내용이다.

 

 

[16번째 기업 제품 및 기술 분석]

 

    1. 제품 종류를 표로 만들어 모조리 써넣는다.

        16번째 기업의 제품은 대략적으로, 섬유로프 / 와이어로프 / 와이어로 구분된다. 이는 대분류일 뿐이며, 각각의 범주 내에 온갖 영어로 이름 지은 로프 제품군이 포진해 있다.

 

    2. 해외 전시회 참가 이력

        로프의 경우, 주로 선박과 해안에서의 수요가 많다. 이에 더해, 요트나 석유 시추 플랜트 등에서도 섬유 로프의 수요가 많다. 금속 로프는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에 의해 부식이 되기 때문에, 물에 젖어도 부식되지 않고 잘 끊어지지 않는 합성섬유 로프가 인기가 많은 것이다. 16번째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을 해양산업 관련 엑스포 등에 나가 전시하고 주기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전염병이 아직 덜 기승을 부릴 때다) 그는 16번째 기업이 어느 전시회에 나가 어느 제품을 홍보했는지를 일일이 검색하고 찾아내서 표에 적어 넣는다. 16번째 기업이 참가하는 전시회의 이름은 무슨무슨 와이어, 무슨무슨 Offshore Energy, 무슨무슨 Marintec, 무슨무슨 SEA 등 다양하다.

 

 

[경쟁사 및 철강 시장 동향 분석]

 

    1. 경쟁사

        16번째 기업의 경쟁사를 모조리 찾아 적어놓고, 해당 기업들의 간략한 정보 및 대표적인 제품 이름을 적는다.

   

    2. 철강 시장 동향

        16번째 기업의 주요 제품은 합성섬유 로프이지만, 강철 로프도 취급한다. 특히나 16번째 기업의 로프를 소비하는 주요 소비자들이 너무 다양하다. 일반 어업 종사자, 석유 시추 시설이나 해양 풍력 에너지 시설부터 거대한 현수교 제작 현장까지 넓게 포진되어 있다. 다들 로프를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조그만 배를 묶어둘 것이냐, 바다 한가운데서 석유를 시추하는 거대한 시설을 떠내려가지 않게 고정할 것이냐, 바람에 흔들리는 무겁고 거대한 교각을 지탱할 것이냐의 차이뿐이다. 무엇을 지탱하느냐에 따라, 로프를 이루는 재료가 달라지며 강도나 인장력에 차이가 생긴다.

 

    3. 산업 내 순위

        16번째 기업은 합성섬유 로프와 강철 로프를 모두 취급하기 때문에, 두 업계에 걸쳐있다고 볼 수 있다. 합성섬유의 경우는 16번째 기업이 1위라고 한다. 하지만 강철 로프의 경우는, 기존의 쟁쟁한 제강 업체들이 많아 1위의 자리가 끝없이 바뀌고 있다.

 

 

[면접 질문 준비]

 

 면접 질문은 이미 쌓일 대로 쌓였으며, 잡X레닛의 면접 후기들을 보며 면접 질문을 더 긁어모은다. 그는 이전의 해외 영업 직무 관련해서 공부했던 내용, 수출 거래 시 필요한 서류, 선적에 필요한 서류, 신용장 등을 다시 정리하며 인성 질문과 직무 질문에 대비한다. 해외영업 질문이니, 해당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영어로도 모두 준비한다. 

 1번째 기업 면접 때 워낙 열심히 준비한 적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는 꽤 익숙하고 수월하다.

 

 

 

 방대한 면접 준비 자료이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으며 무엇보다 그는 재미가 있다. 물론 그가 회사 내부에 입사하여 일을 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어떨지는 모른다. 다만, 아무래도 꿈과 희망을 가진, 가고자 하는 업계와 직무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설레기 마련이다. 

 

 그는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며, 억지로 머리를 굴리고 짜내면서 현업자처럼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16번째 기업의 본사는 여긴데, 공장은 왜 멀리 떨어져 있을까?

    공장이 해안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육상 물류비용이 부담이 되진 않을까?

등등 그는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는데 여념이 없다. 물론 그의 이같은 노력이 면접관들에게 전달이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는 열심히, 정말 열심히 준비한다면 면접관들이 이를 반드시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면접 준비 자료 제작이 끝나고, 그는 자신이 만든 두터운 자료를 계속해서 읽는다. 계속해서 읽으니, 자동적으로 암기가 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첫 번째 기업 면접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는 이번에도, 재무제표 관련 숫자들을 외우기 시작한다. 첫 번째 기업 때처럼 대놓고 암기하지는 않지만, 중요해 보이는 숫자가 점점 그의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다.

 

 왠지 이번 면접은 느낌이 좋다. 16번째 기업은 나름 제품군도 탄탄하고, 시장성도 있어보이며 매출도 2000억을 넘는다. 잡X레닛의 기업 리뷰도 좋고, 연봉도 높단다. 그에게는 최고의 직장이다. 그는, 부디 자신을 뽑아줬으면,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자신을 뽑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간절한 만큼 면접 준비 자료에 줄을 죽죽 그어가며 읽었고, 그의 면접 준비 자료는 점점 더 너덜너덜해진다.

 

 

 안내받은 면접일자가 다가온다. 그런데, 16번째 기업의 면접날이 그의 졸업식 날과 겹친다. 오전에는 학교에 가서 졸업장을 간단하게 수령하고, 곧바로 16번째 기업으로 이동하면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을 만한 시간과 거리다. 그는, 이러한 우연의 일치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졸업식 날 면접을 보다니,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는, 상징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인연인가. 

 

 졸업식이자 16번째 기업 면접일 당일, 아침해가 밝는다. 그는 정장을 입고, 우선 모교로 향한다. 손에는 면접 자료를 든 채, 몇 번이고 탔던 대학교 등교길 대중교통 안이다. 그의 마음은 긴장 반, 설렘 반이며 정신도 맑다. 컨디션이 좋다. 오늘은 왠지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