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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15번째 기업, 17번째 면접 (전통주 및 주류에 대한 관심)

면접날, 그는 15번째 기업에 도착한다. 15번째 기업은 시가지 대로변에, 약 10층 정도 되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다. 당연히, 땅값이 엄청나게 비싼 중심 시가지에서는 약간 벗어난 위치다.

 

 15번째 기업 건물 1층에는, 15번째 기업이 제조하는 각종 주류들을 판매하는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예정보다 약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건물 주위를 빙빙 돌며 이것저것 살펴본다. 유리창 너머의 상점 내부에는, 다채로운 병에 담긴 주류들이 멋지게 진열되어 있다. 전통주라서인지, 그의 눈에는 병의 디자인이 도자기같이 보인다. 혹시나 직원을 마주칠까, 그는 재빨리 건물 뒤편으로 가서 준비해온 면접 자료를 보기 시작한다. 아직 30분이 남았다. 매출은 얼마, 자산/자본/부채는 얼마 등을 계속해서 암기하는 그다.

 

 

 안내받은 시간까지 10분이 남자, 그는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 1층은 주류 판매점 및 안내 데스크가 있고, 사무 공간은 2층부터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은, 개량 한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건물의 인테리어가 급격히 바뀌기 시작한다. 짙은 회색의 대리석 타일이 깔린 바닥은 똑같은데, 벽면과 천장이 모조리 나무 마감으로 바뀐다.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을 콘셉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불가마 사우나 같기도 하고, 통나무집 같기도 하다. 나무로 내부를 둘러싸다시피 한 인테리어 공간에 들어서면, 15번째 기업의 역사를 간략하게 적어놓은 커다란 표가 붙어 있으며, 벽면에는 그동안 15번째 기업이 제조했던 모든 주류가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면접을 보는 회사가, 적어도 보이는 측면에서는 신경을 쓴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런 나무 인테리어는, 사무 공간으로 출입하는 2층 첫 공간에만 해당되는 듯하다. 개량 한복을 입은 인사팀 직원이, 그를 면접 대기실로 안내한다. 대기실 내부는, 보통의 평범한 강의실이나 회의실 같은 공간이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면접자들이 도착한다. 인사팀 직원은, 지금 대기실에 있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면접장에 함께 들어갈 것이라고 안내한다. 덧붙여서, 면접자들끼리 알아서 상의해서 한 명이 대표로 차렷-경례를 하라고 한다. 면접자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누가 해당 역할을 할지 묻는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한 면접자가 그냥 자신이 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당연히 모두들 동의한다. 누구였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 시간이 다 되자, 인사팀 지원은 면접자들을 인솔하여 위로 올라간다. 거의 꼭대기에 가까운 층에서 면접을 진행한다고 한다. 정장을 입은 면접자들은 일렬로 줄지어 개량 한복을 입은 인사팀 직원을 따라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면접장으로 향한다. 꼭대기에 가까워서인지, 야외 공간이 조금 있다. 자연을 조금이라도 느끼라는 의도인지, 야외 공간에는 누군가가 꾸며놓은 듯한 조그만 정원과 대나무 같은 나무에, 졸졸 물도 흐르는 것 같다. 차가운 야외 공기에, 그는 긴장이 조금은 덜해지는 느낌이다. 인사팀 직원은 면접장 앞까지 인솔한 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면접자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15번째 기업, 주류 영업 신입

 

면접자 : 그를 포함해 총 4명, 모두 남자

  어깨가 상당히 넓고 덩치가 크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잘생긴 면접자 1

  구릿빛 피부, 키가 크고 머리가 약간 덥수룩한 면접자 2

  그

  하얀 피부에 안경을 끼고, 살집이 있어 몸이 동글동글한 면접자 4

 

면접관 : 총 3명, 모두 남자

  우측 - 안경을 끼고, 피부가 하얗고 웃는 눈에 인상이 좋은 40대 면접관 1

  중앙 - 검은 피부에 덩치가 크지만, 인상 좋은 아저씨 같은 40대 면접관 2

  좌측 - 검은 피부, 눈매가 날카로우며 보통 체격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면접관 3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아, 들어오세요.

  면접자 일동 : (각자 자리에 서자 사전에 정한 누군가가) 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일동 : 아 그래요. 편하게 앉으세요.

 

 면접실 내부는 꽤나 넓었으며, 면접관과 면접자 사이에는 커다란 책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책상을 보며, 상당히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4개 정도의 분리된 책상을 붙여서 여러 모양을 낼 수 있는 책상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은, 4개로 분리된 책상의 모양이 초승달 모양이라는 점이다. 15번째 기업은 초승달 모양의 책상 4개를 사슬처럼 붙여서, 길게 일자로 늘어뜨린 모양으로 놓아두었다. 면접자들은 자리에 앉는다.

 

 

  면접관 2 : 그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주류 영업직에 지원하신 분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자,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이쪽 면접자 1부터.

  면접자 1 : 네, 안녕하십니까!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면접자 1입니다. 저는 AA 회사와 BB 회사에서 인턴 및 회사 생활을 하며, 고객들의 ...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의사소통에 강한 지원자, 면접자 2입니다. 저는 ...

 

  그 : 안녕하십니까, 15번째 기업 영업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15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얀.얼.굴.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자 4 : 안녕하십니까, 주류에 관심이 많은 술고래, 면접자 4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전통주에 관심이 많아...

 

 

  면접관 2 : 네, 다들 반갑습니다. 먼저 면접자 1에게 질문드릴게요. 야구를.. 하셨었네요? 얼마나 하신 건가요?

  면접자 1 : 아 네, 21살 때까지 했었습니다.

  면접관 2 : 프로까지... 하신 건가요?

  면접자 1 : 네, 프로 생활을 잠시 했습니다.

  면접관 2 : 그런데 왜 프로 생활을 그만두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나요?

  면접자 1 : 허리 부상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슨 일을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식품 영업에 뛰어들었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면접관 2와 3은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은지, 면접자 1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그는 면접 대기실에서 면접자 1을 보며, 어깨가 태평양 같이 넓은 것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구 선수의 어깨는 다르구나 생각하는 그다.

 

  면접관 3 : (날카로운 눈매를 반짝이며) 프로팀에 계셨다고요? 어느 팀에 있었나요.

  면접자 1 : OO OOO팀에 있었습니다.

  면접관 3 : 같이 프로 생활을 시작한 동기 중에 아직도 프로에 남아 있는 선수가 있나요?

  면접자 1 : 아.... 지금까지 팀에 남아 있는 선수는 ㄱㄱㄱ 한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이 시작했던 ㄴㄴㄴ과 ㄷㄷㄷ은 현재 다른 팀으로 이적했습니다.

  면접관 3 : ㄴㄴㄴ? XXX의 ㄴㄴㄴ이 동기라는 말이죠?

  면접자 1 : 네 맞습니다.

  면접관 3 : 프로 생활을 바로 그만두신 거예요, 아니면 코치를 잠시 하셨던 거예요.

  면접자 1 : 아무래도, 바로 그만두지는 않고 코치로 잠시 전향을 했었습니다.

  면접관 2 : 그,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코치도 많이 하는데, 지금 코치진에 아는 사람들이 있나요?

  면접자 1 : 네, 선배나 동기 중에서도 현재 코치로 활동하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면접자 3 : 그런데, 코치를 왜 그만두고 회사 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면접자 1 : 금전적인 측면도 있었고, 또 개인적으로 성취욕으로 인한 점도 있었습니다. 저는...

  면접관 3 : 음... 일단 알겠습니다.

 

 면접관 3은 야구 관련해서 더 물어보고 싶으나 참는 표정이다.

 

 

  면접관 2 : 면접자 2께서도... 운동을 했네요? 어떤 운동을 했나요?

  면접자 2 : 네, 테니스 선수를 했었습니다.

  면접관 2 :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취업을 결심한 이유가 뭐죠?

  면접자 2 : 아, 그 부분은...

 

 면접자 2도 나름 준비해서 대답을 하긴 하나, 면접자 1보다 말주변이 떨어진다. 면접자 1은 이미 다른 회사를 몇 번 거치면서 어느 정도 사회인스러운 답변이 나오는데, 면접자 2는 이번 면접이 처음인 듯 긴장을 많이 하고 떨린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면접관 2 : 그래요... 하얀 얼굴 씨? 호주를 다녀오셨군요?

  그 : 네, 1년 동안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면접관 2 : 그리고 대학교 상태가 지금... 졸업을 곧 하시는 건가요?

  그 : 네, 곧 학위증을 받으면 졸업입니다.

  면접관 2 : 음, 그렇군요. 댁이, 아 약간 멀군요. 오늘 어떻게 왔나요?

  그 : 지하철을 타고 왔습니다...

 

 이력서상 별 특색이 없어서인지, 면접관은 그에게 일반적인 질문만 한다. 그가 특색이 없는 것도 있긴 하나, 앞의 두 지원자가 너무 특이한 것이기도 하다. 

 

 

  면접관 2 : 네, 면접자 4께서는... 조주기능사라는 자격증이 있네요. 이게 어떤 자격증이죠?

  면접자 4 : 아, 칵테일을 조주할 수 있다는 자격증입니다.

  면접관 2: 술을 좋아하나요?

  면접관 4 : 네, 아주 좋아합니다.

  면접관 2: 자기소개서에도 보니까, 면접자 4는 술에 대해서 어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는 것 같네요. 술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주량이 어떻게 됩니까?

  면접자 4 : 4병입니다.

  면접관 일동 : 허허... 술을 잘 드시는구만. 아, 말 나온 김에, 다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면접자 1 : 3병입니다.

  면접자 2 : 3병 반입니다.

  그 : 2병입니다.

  면접관 2: 허허, 다들 잘 드시네요. 저도 젊을 때는 많이 마셨는데, 이제는 줄어서 2병 정도 마십니다.

  면접자 일동 : 아 그렇습니까? 하하...

 

 면접은 면접관 2가 주도했으며, 면접관 1은 웃음을 머금은 채 앉아있다. 면접관 3은 안 그래도 눈이 매서워서 날카로운데, 인상까지 찌푸리고 말없이 면접관 자리에 앉아 있다. 그는 면접관 3이 면접자들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그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다. 나중의 면접자들끼리의 대화에서, 면접자 1은 면접관 3이 전날 술을 마신 것 같다고 말한다.

 

 

 말없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면접관 3은, 면접자 1에게 야구 질문을 할 때는 꽤나 적극적이다.

 

  면접관 3 : 그.... 면접자 1에게 질문을 좀 드리고 싶어요. 야구에서 빈 볼(투수가 일부러 타자를 맞히는 투구) 던지죠?

  면접자 1 : 아, 네.

  면접관 3 : 면접자 1은 빈 볼 던져본 적 있어요? 아니, 그러니까, 보통 프로 리그에서 빈 볼을 대체 왜 던지는 겁니까? 투수들이 악의적으로 던지는 건가요?

  면접자 1 : 투수들이 악의적으로 던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코치들의 지시에 의해서 던지곤 합니다.

  면접관 3 : (눈매가 더 매서워지며) 면접자 1은, 프로 생활했을 당시 코치가 빈 볼 던지라고 했으면 던졌을 건가요?

  면접자 1 : (당황하며) 음...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코치가 그렇게 지시한다면... 던질 것 같습니다.

  면접관 3 :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래요. 알겠습니다. 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면접은 약 40분가량 계속해서 이어진다. 면접자 1이 가장 많은 질문과 관심을 받았고, 그다음은 면접자 4였으며, 그와 면접자 3은 그다지 질문을 받지 못한다.

 

  면접관 1 : 면접자 1, 회사 생활을 여러 곳에서 했네요. 어디어디에서 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면접자 1 : 식품회사 AA에서 식품 영업 및 주류 납품을 했고, 현재는 인테리어 회사 BB에서 영업 담당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면접관 2 : 이직 사유들이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면접자 1의 이력서를 보면, 어찌 보면 너무 이직이 잦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요. 지금 이전 회사들 모두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직을 하고 있단 말이죠.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세요.

  면접자 1 : 아 네, 아무래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제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고민은 했지만, 확실히 결정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첫 직장을 들어갔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저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 다른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어 지원하고, 합격했습니다. 현재는 제가 원래 전통주에 관심이 있어왔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3 :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가도 또 1년이 안되어 나가는 거 아닙니까?

  면접자 1 : 아, 아닙니다. 해당 부분이 걱정되실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과 15번째 기업에 대한 관심은 정말 진심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는, 면접자 1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운동선수 출신에 몸도 좋고, 외모도 훤칠하니 영업직무에서 꽤나 선호받았을 면접자 1이다. 그래서 마음에 맞는 회사를 찾아 이직했을 가능성이 높다. 면접자 1은 그러한 자신의 잦은 이직 사유에 대한 대답과 스토리를 그리 명쾌하게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면접자 1은 프로야구 선수라는 독특하고도 대단한 경력으로 인해 이미지가 상당히 좋은 상태다. 면접관들도, 아주 이상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 한 면접자 1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는 않을 것 같은 표정들이다.

 

 

 오래도록 다른 이들의 답변만 듣고 있던 그에게도, 질문이 날아온다. 오히려 인상이 강하고 무서워 보이는 면접관 3이, 외면받는 느낌이 들까 봐 그를 챙겨주는 느낌으로 질문을 한다.

 

  면접관 3 : 그... 하얀 얼굴 씨는, 호주를 다녀오셨네요. 그럼 영어도 잘합니까?

  그 : 아, 네, 일상 회화는 문제없이 합니다.

  면접관 3 : 그러면 해외영업 직무를 지원하시지, 우리 회사를 지원하기에는 영어가 아깝지 않나요?

  그 : 아, 지원을 하면서, 15번째 기업도 해외영업을 뽑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회사들 해외영업을 지원했었는데, 항상 해외 유학파나 주재원 아들들을 만났습니다. 제 영어 실력이 그리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만, 회사에서 원하는 것은 현지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이나 해외 대학에서 공부한 것을 선호한다고 생각되어 15번째 회사의 국내 영업을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3 : (진심인지 예의상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 : 또 15번째 기업도, 재무제표 상으로 보아 해외 매출도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또 해오 진출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 저의 영어 실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면접관 3 : 아, 그렇죠. 그럼요. 영어 잘하는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죠. 그럼요...

 

 계속된 탈락 경험 때문인지, 이번 면접에서도 자신이 뽑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는 붙잡고 있던 가면 줄을 약간은 놓아버린다. 그냥 허심탄회하게, 조금이나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그다.

 

 

  면접관 2 : 면접자 4는, 술 관련해서 글을 쓰고 있다고요?

  면접자 4 : 네, 맞습니다.

  면접관 2 : 허허, 술에 정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혹시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줄 수 있나요?

  면접자 4 : 아 네, @!@#$!@#%$#$%입니다.

  면접관 2/3 : (핸드폰으로 검색한다)

  면접관 3 : 음.... 안 나오는데...

  면접자 4 : 아, 일반 검색으로는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시면 나옵니다.

  면접관 3 : 어디.... 아, 이건가?

  면접관 2 : 오 이거 같네요. 글을 언제부터 쓴 건가요? 사람들이 많이 보나요?

  면접자 4 : 중학생 때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면접관 2 : 중학생? 술을 그때부터 마셨나요?

  면접자 4 : 아, 제가 집에서 술을 조금 일찍 배웠습니다.

  면접관 2 : 허허... 아까 주량이, 아 4병이라고 했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많이 마셨나요?

  면접자 4 : 아닙니다. 어릴 때는 저도 1병 정도밖에 못 마셨는데, 계속해서 마시다 보니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면접관 3 : 그.. 아까... 칵테일도 그럼 직접 만들어 마시고 그러나요?

  면접자 4 : 네 맞습니다.

  면접관 2 :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과 술은 무엇인가요?

  면접자 4 : 개인적으로, XXX와 YYY를 가장 좋아합니다. 만들 때의... ...(그는 모르는 술이다)

  면접관 일동 : 우리보다도 더 전문가인 것 같네요. 허허...

 

 

면접은 조금씩 막바지에 다다른다.

 

  면접관 2 : 네, 이제는, 혹시 면접자분들이 우리 회사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세요.

  면접자 1 : 네, 혹시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면접관 3 : 아, 그 부분은, 제가 대답을 하죠. 보통 영업직이라고 하면 발로 뛰고, 막 되게 힘든 것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미 거래하고 있는 거래처들이 있고, 그 거래처들을 관리하는 업무가 많죠. 특히나 숫자 관련 업무가 많아요. 엑셀은 잘들 하시나요? 영업직은 엑셀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

 

 면접 때 면접관들은 종종 면접자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한다. 신입 지원자들은 딱히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질문을 하면, 다른 면접자들은 왠지 자신들도 질문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리라는 염려 때문이다.

 면접자 1에 이어, 면접자 2도 일반적인 질문을 한다. 가뜩이나 그는 면접관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상태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 질문을 통해 어떻게든 어필을 해보려는 도박을 감행한다.

 

  그 : 네, 제가 15번째 기업 재무제표를 보았는데, 매출이 조금은 감소하고 현금흐름도 조금 악화되는 상황으로 보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 한약재 사태로 인한 여파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으로 저는 예측했는데, 회사 내부에 계시는 면접관님들께서는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재무제표, 15번째 기업의 역사를 인지했다는 어필이다)

  면접관 2 : 아, 그 부분은, 문제가 없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여러분들을 모시고 채용 면접을 하고 있잖아요? 현금흐름이 안 좋은 상황이라면, 추가로 채용을 하지는 않겠죠.

  그 : 아 네,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어필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면접관 1 : 네, 이제 시간이 다 되어서, 마지막으로 할 말들이 있으면 하시고 끝내겠습니다. 면접자 1부터 하세요.

  면접자 1 : 네, 우선 오늘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직이 잦아 면접관 분들께서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전 회사들에서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았고, 이제 제가 관심을 가져온 회사로 이직을...

  면접자 2 : 네, 저도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

  그 : 네, 저도,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15번째 기업 면접을 준비하면서, 한국 전통주를 제조하는 15번째 기업의 역사에 감탄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부디 면접에 합격해서, 15번째 기업이 그리는 미래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자 4 : 네, 저도 오늘 면접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술에 대한 관심과... ...

 

  면접관 1 : 그래요. 긴 시간 동안 면접 보시느라 수고했어요. 다시 밖으로 나가셔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시면 됩니다. 수고했어요.

 

 

 면접이 끝나고, 면접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대기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다들 한숨을 쉬며 입이 터진다.

  면접자 1 : 어후, 수고하셨어요.

  면접자 2 : 네, 수고하셨어요.

  면접자 4 : 긴장이 많이 되네요. 면접자 1님께 질문을 엄청 하시더라고요.

  면접자 1 : 네, 너무 떨려서, 대답을 너무 못했네요.

  면접자 중 누군가 : 면접관 분들 중에서도, 왼쪽에 면접관 3이 진짜 무섭더라고요.

  그 : 네, 뭔가 면접을 보기 싫어하시는 것 같은 느낌?

  면접자 1 : 아, 맞아요. 어제 술 드신 것 같은 느낌이던데요.

 

 

 대기실이 있는 2층으로 내려온다. 면접자들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다들 가벼운 발걸음이다. 개량 한복을 입은 인사팀 직원이, 대기실에서 면접자들을 맞이한다. 

  인사팀 직원 : 다들 면접 잘 보셨나요? 다른 조보다 더 오래 걸렸네요.

  면접자 일동 : 아 더 오래 걸렸나요?

  인사팀 직원 : 네, 보통 30분 정도 걸리는데 40분이 넘었네요. 면접관 분들께서 좋게 봐주셨나 봅니다. 이거... (책상을 큰 종이백을 나눠주며) 면접자분들께 저희가 드리는 겁니다. 

  면접자 4 : 와, 이게 뭔가요?

  인사팀 직원 : 저희 회사에서 제조한 술입니다.

  면접자 일동 : (종이백을 하나씩 들고) 와,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팀 직원 : 네, 면접 결과는 아마 이번 주 내로 알려드릴 거예요. 좋은 결과 있으실 겁니다.

  면접자 일동 : 감사합니다!

 

 15번째 기업은, 주류 제조업체답게 면접자들에게 참가비로 술을 나눠준다. 그런데, 술이 전부다. 면접비가 따로 없다. 면접비로 술을 주는 셈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로서는 돈을 받는 것이 더 낫지만, 빳빳한 종이봉투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술을 받는 기분도 썩 나쁘진 않다.

 

 약 일주일 뒤, 15번째 기업으로부터 문자가 날아온다.

1차 면접 불합격

 면접 분위기 등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합격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면접 탈락이다. 이제 주류 업계와 주류 영업직은 지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째 면접을 볼 때마다, 지원하지 말아야 할 분야만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눈을 돌려 모니터 속 채용 공고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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