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을 함께하진 않았지만, 그는 레너드와 비스트로 대해 좋은 기억이 많다. 레너드는 영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했다. 동양인이 영어를 할 때 드러나는 특유의 호흡이나 억양도 찾아볼 수 없다. 눈을 감고 들으면 현지인과 전혀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다.
레너드는 비스트로의 웨이트리스들, 손님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는 레너드만큼 호주인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동양인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 호주인들이 레너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유쾌함과 존중이 보였다.
황량한 브리즈번 외곽에 위치한 이 비스트로는, 그가 꿈꿨던 진정한 호주 현지였다. 레너드와 그를 제외하고는 동양인을 본 적이 없다. 웨이트리스들은 모두 인근에 사는 이들이었고, 손님들은 대형 화물 트럭을 운전하는 트럭 기사들이었다. 트럭 기사들은 음식을 기다리다가도, 불쑥 주방에 들어오곤 했다. 그러면 주방 내에서는 유쾌한 웃음이 시작되곤 했다. 그들은 레너드의 친구이자 단골이자 로컬인이다. 이 비스트로와 주말 시장에서 일한다면, 정착해서 1년 내내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다.
웨이트리스의 수는 매일 달랐다. 바쁜 때는 5명일 때도 있었고, 한가한 때는 1명이었다.
그 날은 그와 레너드, 웨이트리스 5명이 일했던 금요일 점심이었다. 그가 비스트로에 도착하니, 주방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음악이 마음에 들어 Shazam 앱으로 저장해둔다. 웨이트리스들은 그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이윽고, 트럭 기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트럭 기사들은 그들의 직업 특성상, 음식을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포장하는 빈도가 높다. 그리고 차를 오래 세워두고 싶어하지 않아서, 빠르게 음식이 나오기를 요구했다. 물론 그럴수록 주방은 더더욱 아수라장이 된다. 이 날, 레너드의 결산에 따르면, 런치타임 3시간 동안 스테이크 180개가 팔렸다. 3시간은 180분이므로, 평균 1분에 스테이크가 1개씩 팔린 셈이 된다. 주방 안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일한 후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은 일상이다.
레너드는 그에게 먹고 싶은 것을 아무것이나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그는 정말이냐고 거듭 되물었고, 확인받은 후에야 자신의 점심을 만들기 시작한다. 당시에 그는 항상 배가 고팠다. 그래서 그는, 구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구워 햄버거를 만들었다. 스테이크 200g / 버거 패티 1개 / 베이컨 2개를 구워 야채, 치즈와 함께 쌓았다. 메뉴로 파는 버거의 2배 정도 되는 양이다. 여기에 웨지 감자와 감자튀김까지 쌓아, 탄산음료와 함께 먹는다. 레너드와 웨이트리스들은 깜짝 놀라면서, 'Magnificent Burger' 라고 부르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는 이 햄버거와 감자 튀김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햄버거도 맛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좋았다.
그는 앉아서 쉬던 도중,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성을 보고 기겁했다. 주방에서 같이 일하던 웨이트리스는, 그 여성이 비스트로와 연결된 바(bar)의 스트립걸이라고 알려줬다. 바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스트립쇼를 했다. 그는 웨이트리스에게 그녀도 스트립 쇼를 하느냐고 물었다. 웨이트리스는, 자신은 그 정도의 페이를 지불받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저녁 준비를 하던 때에, 웨이트리스가 갑자기 그를 부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가니 내부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바에서 스트립 쇼가 진행 중이었다. 아까 봤던 상의를 탈의한 여성이, 화려한 무대 위에서 봉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빙글빙글 도는 폴 댄스는 아니고, 19세 관람 영화에서 볼 법한 유혹적인 스트립 폴 댄스다. 기름인지 무엇인지를 발라, 여성의 몸이 반짝반짝 빛났다. 옷이라고는 얇은 끈 팬티가 전부다. 트럭 기사로 보이는 관중들이 미친 듯이 환호한다. 그는 처음에는 얼떨떨하지만, 차츰 주위 분위기에 동화된다. 스트립쇼를 하는 여성은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당당하다. 당당한 모습에서 일종의 직업정신과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를 데려간 웨이트리스가, 스트립 쇼를 하고 있는 여성의 남자 친구도 이 곳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는 이를 들으며 '역시 호주는 다르구나' 생각한다.
그는 스시 샵과 주말 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스트로 주방 내에서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비교적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는 비스트로 주방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각 부위의 영어 이름이 헷갈렸고, 무엇보다 굽기 조절이 어려웠다. 스테이크는 레어에서 웰던 중 주문받은 굽기를 맞춰야 한다. 레너드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바로 알아맞혔다.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고기의 딱딱한 정도, 새어 나오는 핏물의 색깔 등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비스트로의 빠른 회전 속도, 스테이크 굽기를 알아맞히는 데 적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너드는 그를 계속해서 불렀다. 나중에 그는 이 사실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혹시 레너드가 같은 동양인인 그가 반가워서 조금이나마 기회를 더 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 - 숙소 찾기 (0) | 2021.06.25 |
---|---|
22 - 쓰리잡 생활 (0) | 2021.06.25 |
20 - Bistro(2) (0) | 2021.06.22 |
19 - Bistro (1) (0) | 2021.06.22 |
18 - 주말 시장(2) (0) | 202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