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Tom의 초밥 집, 레너드의 비스트로, 낀의 주말 시장까지 3개의 일자리를 병행했다. 세 일자리 모두 파트타임이나 캐쥬얼이었으므로 가능했다. 보통 월~수에는 초밥 집에서 일했고, 목~금은 비스트로, 주말에는 시장에서 일했다. 초밥 집은 백패커스와 가까웠으나, 비스트로와 주말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그의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졌다. 그는 자전거를 사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매일같이 장거리를 타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든 자전거다.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그는 이 애정 어린 자전거를 선뜻 팔 생각이 없다.
그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바빴다. 이 시기 그의 모습을 표현하자면,1) 일을 한다.2)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도서관 컴퓨터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새로운 숙소를 찾는다. 주말 시장과 비스트로에 고용된 뒤부터는 그도 새로운 일자리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일자리 찾던 시간까지도 숙소를 찾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임시 숙소 그는 여전히 백패커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처음 체크인하던 날 인사했던 룸메이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떠났다. 그는 자신이, 이 백패커스의 수호신 또는 지박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백패커스 직원들과도 친해졌고, 몇몇 직원은 그만두었다. 그는 백패커스의 신입 직원보다 고참인 셈이다. 계속되는 백패커스 생활에서 그는, 백패커스에 아예 눌러사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하나, 문제는 역시 돈이다. 백패커스는 보증금(열쇠 분실 방지)은 작지만, 하루 단위 숙박비가 그리 싼 편은 아니다. 돈을 모으고자 한다면, 그리고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쉬고자 한다면 당연히 백패커스가 아닌 Share house로 가야 한다.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그는, 일자리가 안정되기 전에는 고정된 집을 찾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주거지의 위치가 고정되어 버리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백패커스는 그가 원한다면 당장 오늘내일도 나갈 수 있다. 반면 Share house는 그런 식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이것이 그가 약간의 비용과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백패커스에 머문 이유다. 이제 쓰리잡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올랐다. 그는 드디어, 제대로 된 숙소를 구할 때가 됐다고 느낀다.
끼니 때우기 그는 호주에 도착해서, 일종의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어서 빨리 자리부터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리를 잡고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소비를 졸라맸다. 그의 정신이 비상사태에 돌입하자, 그의 신체도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그는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불편한 것을 참아가며 돈을 아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는 무모하고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돈을 아끼려고 작정하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식비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위장과 건강을 희생해서 돈을 아낀다. 다행히도 20대의 젊은 신체가 잘 버텨주어, 건강에 이상이 생기진 않았다.
호주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식료품점이 두 곳 있다. Coles(콜스)와 Woolworth(울월스)다. 이 두 곳은 호주 내에서 가히 독과점이라 할 만큼의 위용을 자랑한다. 아무리 황량한 시골이어도 콜스와 울월스는 있다. 그는 콜스와 울월스 중, 딱히 어느 한 곳에 선호는 없다. 다만 세일을 하는 상품이 있다면, 그는 세일을 따라간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한국의 대형마트처럼 식료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는 진열되어 있는 식료품 중 가장 싼 것만 집었다. 파스타 면은 1불짜리만 먹고, 빵이나 과자도 3불이 넘어가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쌀이나 나시고랭 등 아시아 식재료 코너가 있으나, 그는 지나친다. 쌀 등을 조리하기엔 백패커스의 주방이 너무 부실하다. 쌀은 보관도 힘들고, 이 무게에 이 정도 가격이면 비싼 것인지 계산이 바로 서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그냥 아시아 식재 코너가 비싸다고 생각하기로 결정한다. 호주는 역시 소고기가 싸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살 생각이 없다. 스테이크 대신 집어 든 것은 베이컨이다. 그가 집은 것은, 여러 겹을 몽둥이처럼 뭉쳐 놓은 모양의 베이컨이다. 무게는 1kg, 가격은 6불이다. 그에게 완벽한 식재다. 그의 식사는아침 - 우유와 씨리얼, 식빵과 잼점심 - 일하는 곳에서 해결저녁 - 주로 간단한 파스타(기성 소스에 면만 삶아 넣은)를 해먹는다. 파스타 재료가 없을 때는, 빵이나 과자를 우유와 함께 먹으며 대충 때운다. 그가 외식을 하거나 완성된 음식을 사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의 피부는 점점 더 구릿빛이 되었고, 체중이 줄면서 볼살도 빠졌다. 그는 자신의 살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피부가 타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외모가 뭔가 글로벌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뻐한다. 그는 썬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일을 하느라 / 일자리와 숙소를 찾느라 항상 바빴지만, 그는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던 그의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바쁘고 활기차게 지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처한 바쁨에 둘러싸여, 호주의 여유로움과 일상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찾아다녔다. 이는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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