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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5 - Meetup

 Meet up(밋업)이라는 어플이 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끔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어플을 다운받아 몇몇 인증을 거치고 들어가면, 관심 있는 취미나 분야를 설정할 수 있다. 가까운 거리 내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의 모임이 있는지 찾아본다. 모임들은 대부분 정해진 요일, 정해진 날짜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참가 신청을 하거나,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아도 밋업 보고 왔다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모임에 끼어준다. 호주 밋업 어플에서 인기 있는 모임은 언어 교환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독서/영화, 자전거, 요가 등이다.

 

 그도 밋업을 통해 모임에 참가했다. 그가 친하게 지냈던 백패커스 룸메이트들은 모두 떠난 데다, 이동이 잦은 백패커스 특성상 누군가를 진득하게 오래 만나기가 쉽지 않다. 백패커스에서 새로이 만나는 투숙객은 대부분 20대 초반, 워킹 홀리데이를 막 시작한 유럽 청년들이다. 그는 이들과의 대화가 거의 비슷하고, 예상이 가능했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 밋업을 사용한 것이다.

 

 그가 관심사로 설정한 분야는 언어 교환이다. 브리즈번에는 언어 교환 모임이 많다. 주로 일본어-영어, 스페인어-영어, 중국어-영어 교환이다. 한국어는 없다. 그는 날짜와 시간이 맞는 것을 그냥 선택한다. 영어와 다른 언어 하나를 동시에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다.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그는 다른 기대감도 가지고 있다. 밋업을 통해서 이성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아닌 척 하지만, 결국 그도 몸 건강하고 외로운 20대 청년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성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어 갔다. 그는 밋업이, 이성에 대한 관심을 언어 교환이나 취미 공유로 포장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주 수요일 브리즈번 도심의 맥주집에서 열리는 언어교환 밋업에 참여했다. 참가 인원은 약 20명, 모임을 주최하는 이들은 두 명이고 매주 나온다. 성비는 반반 정도이며, 인종도 백인과 아시안이 반반 정도다. 시작할 때는 테이블 하나에 네다섯 명씩 앉아 시작한다. 30분 단위로 몇몇 인원들이 테이블을 옮겨가며 새로운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룰이지만, 형식적인 룰일 뿐이다. 

 

 참가하는 백인들은 브리즈번 현지인, 아시안들은 학교나 어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다. 그가 백패커스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사람들이다. 어색한 분위기는 맥주의 힘을 빌려서 극복한다. 

 

 몇 주에 걸쳐, 네다섯 번 정도 밋업에 나간 뒤 그는 실망했다. 이성 친구에 대한 기대는 고사하고, 영어 실력 향상이라는 목적도 달성하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누구의 타겟도 아니었다. 백인은 주로 남성들이 나왔는데, 이들은 아시안 여성에게 더 호의적이었다.(이 점에 대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시안의 경우, 목적은 영어 연습이므로 백인을 선호했다. 그가 보기에, 백인 남성들은 아시안 여성이 타겟이며, 아시안 또한 백인이 타겟이다. 그는 어느 누구의 타겟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붕 떠버렸다고 생각한다.

 대화도 백패커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너는 누구고, 무슨 일을 하고, 호주에 왜 왔고, 앞으로 계획은 어떻고 등등 얕은 이야기에 머문다. 이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하며 거치는 당연한 순서였지만, 백패커스에서 이미 너무 많이 거쳤다. 그는 성급하게,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을 기대한다.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밋업은 그가 노력했다면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성 친구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면서, 백패커스처럼 얕은 수준에 머무는 대화로 인해서, 그는 밋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밋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점들이 분명 있었으나, 갈수록 귀찮음이 커진다. 결국 한 달 뒤, 그는 밋업을 이용해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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