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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7 - 브리즈번의 '삼성'

 그는 공장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공장과 농장의 다른 점은, 농장은 주로 시골에 위치하나 공장은 브리즈번 근교에도 위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시골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브리즈번 씨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장을 찾아본다. 공장은 케잌 공장, 과자 공장, 해산물 공장, 닭고기 공장, 소고기 공장 등 다양하다. 그는 케잌 공장이라는 말을 듣고 아기자기한 동화나라 같은 공장을 상상한다. 케잌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구직 정보도, 워홀러가 일한다는 사례도 들은 바가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 그가 일을 얻을 수 있는 공장은, 인력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육가공 공장이다.

 

 

 브리즈번에는 한인 워홀러들에게 이른바 '삼성'으로 비유되는 닭고기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 취직하면, 시급이 20불을 훌쩍 뛰어넘는 데다가 해당 공장에서 제조한 닭고기 제품은 직원 할인을 받아 2불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호주 삼성' 공장을 다니는 이들은 하루 세 끼 전부 닭고기를 먹으며 지낸다는 소문과 블로그 포스팅이 자자했다.

 

 '브리즈번 삼성' 공장은 네이버에 검색해도 블로그 글이 많다. 그곳에 다니는 워홀러들은 돈 걱정이 없고, 대부분 행복해 보인다. 그도 공장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이 '삼성' 공장에 지원했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브리즈번의 '삼성'에 취직하는 방법은, 이력서를 메일로 보내놓고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방법 뿐이다. 그래서 워홀러들 사이에서는 이력서의 Cover Letter가 중요한 것이 아니냐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커버레터를 구구절절이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이 공장을 알고 있었다느니, 너네 공장 닭을 먹고 깊은 감명을 받아 꼭 일하고 싶다느니, 자신도 닭고기 가공 산업에 기여하고 싶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곳에서 '서류 합격' 했다는 이들 중에는 심지어, 자신의 '삼성 합격 Cover Letter'를 돈 받고 팔겠다며 한인 사이트에 올리는 이도 있었다.

 

 지금까지 호주에서 겪은 그의 구직 경험으로 볼 때, 이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는 커버레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검증되지 않은 남의 Cover Letter에 피 같은 돈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한국으로 치면 다른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돈 주고 사는 것이리라. 

 

 그는 '브리즈번 삼성'에 메일을 계속 보낸다. 하지만 답장이 없다. 세 번째 같은 메일을 보내면서 그는 깨닫는다. 그는 '브리즈번 삼성'에서 일할 수 없다. 답장이 오기만을 기대하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그의 워킹홀리데이 생활 중 순전히 운에 기대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쉽긴 하지만 '브리즈번의 삼성'에 대한 기대를 꺾고, 항상 사람을 뽑고 있는 다른 공장을 다니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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