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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6 - 비수기

 비수기가 다가왔다. 연말이다. 톰은 그에게, 브리즈번 사람들은 연말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집 안에서 가족끼리 보낸다고 했다. 그 말은, 레스토랑이나 외식업계의 비수기가 온다는 뜻이다. 그는 톰의 말을 듣고, 연말이나 휴가 때 외식하는 한국과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톰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초밥 샵과 주말 시장의 손님들이 급감하기 시작한다. 비까지 자주 내리면서, 주말 시장이 한가해졌다. 주말 시장 고용주 낀은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낀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한다. 낀도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아직 초밥 샵과 비스트로가 남아있긴 하나, 그는 무언가 쎄한 느낌을 받는다. 비스트로에서 그를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초밥 샵도 예전 같지 않다. 그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닥쳐올 무언가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험을 하고자 하는 그였으므로, 새로운 구직 활동을 계획하는 것이 조금은 기뻤다. 이제 그의 이력서에도 호주 경력이 쌓였다. 경력자의 구직 활동은, 처음 이력서 100장을 돌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쉬울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도서관에 앉아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노트를 꺼낸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등학교 등교 때 받았던 한 입시학원의 커다란 노트다. 그는 이 노트에,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적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노트에는 그가 상상하고 계획한 워킹홀리데이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자신의 계획과 꿈을 반복해서 적었다. 글씨체도 그가 쓸 수 있는 가장 반듯한 글씨체로 적는다. 일종의 수양이나 의식과 같다. 그는 그렇게 반복하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적을수록, 그렇게 적은 목표와 미래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었다.

 

 내친김에 그는 노트에, 자신이 호주에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모조리 적기 시작한다. 적고 보니 할 수 있는 일, 해보고 싶은 일이 꽤 많다. 주방 보조라는 일자리는 이미 달성했다.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지만, 워킹 1년 내내 주방 보조만 할 생각은 없다. 마침 외식업계는 비수기가 오고 있다. 그는 아예 업종을 바꾸어야 하나 고민한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장을 들어갈 수 있다는 한인 커뮤니티의 글이었다. 

 

 

 한국에서 그가 봤던 가장 많은 워킹홀리데이 사례가 공장이나 농장이다. 호주는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공장이나 농장에서 항상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는 호주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농장이나 공장을 피했다. 농장과 공장의 특성상, 영어로 말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은 중노동에 가깝고, 농장이나 공장에서 같은 한국인끼리 어울리며 지낸다는 영상과 소문을 많이 접했다. 그래서 농장이나 공장은 그의 선택지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는 발로 뛰어서 일자리를 얻었고, 키친핸드와 주말 시장 등을 통해 영어도 많이 익혔다. 공장에 가더라도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를 바탕으로 공장의 환경을 알맞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다. 그는 생각 끝에, 호주 공장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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