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공고를 계속해서 보는 그에게, 한 공고가 눈에 띈다. Fund raising(펀드레이징)이라는 잡의 공고다. 시급은 최저, 인센티브에 대한 설명도 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이 없어, 감이 오지 않는다. 그가 이력서를 넣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다.
알고 보니 펀드레이징 잡은, 기금 모금 활동을 하는 일이었다. 한국은 조금 덜하지만, 호주 길거리에는 펀드레이징을 하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조그만 가판대를 만들어 놓고, 두 명 정도의 펀드레이저(Fund raiser)가 유니폼을 입고 서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서 붙잡고, 이러이러한 사업에 관심이 없냐고 이야기하면서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이다.
공익적 사업에 대한 기금 조성인 듯하다. 처음 보기에는 괜찮은 일인 것 같다. 그가 면접을 보러 간 펀드레이징 잡도, 무슨 태양열 패널 사업에 대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었다. 지원자의 수는 약 15명, 회사 안으로 들어가니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잘생긴 백인 직원이 그들을 맞이한다. 면접관이다.
면접관은 회사가 태양열 패널 사업을 하고 있다며, 기금 모금을 위해 일할 이들을 모집한다고 설명한다. 그를 포함한 면접자들은 주의 깊게 듣는다. 이어 면접관은, 이들에게 과제를 낸다. 옆에 앉은 사람과 인사하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정보를 캐내라고 한다.(이는 펀드레이징 잡 예비 훈련인 셈이다) 그와 면접자들은 순수해서, 열정적으로 이를 수행한다. 면접자들은 대부분 워킹홀리데이 초반의 워홀러이며, 국적은 다양하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한 명씩 일어나서 자신이 이야기했던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모두들 열심히 했으나, 형식적인 과정인 것 같다. 면접관은 웃으면서 듣고 있다가,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면접관은 조직 구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펀드레이저들이 있고, 위에는 팀장이 있고, 그 위에는 팀장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는 식이다. 펀드레이저는 자신들이 모금해온 기금의 일정 부분을 인센티브로 받는다. 기금을 많이 조성하면, 팀장으로 올려준단다. 팀장으로 올라가면, 팀장은 아래에 펀드레이저들을 거느리는데, 팀장은 자신이 거느린 펀드레이저가 모금한 기금에서도 일정액을 인센티브로 받는다. 그렇다. 설명을 들을수록 확실해진다. 이건 뉴스에서나 보던 피라미드 구조, 다단계다.
면접관은 면접자들의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성공 사례를 이야기한다. '수지'라는 직원은, 6개월 전에 펀드레이저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팀장이 되어 월 1만불(800~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앉아서 벌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돈에 귀가 솔깃하긴 했으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드레이징 잡은 꽤 인기가 있다. 그가 본 유럽 청년들은 펀드레이징 잡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인센티브는 고사하더라도, 가만히 서 있으면서 시급을 조금이나마 받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펀드레이저라는 직업에 의문을 품는다. 면접관은 워홀러들에게 사업이나 기술에 대한 이해는 요구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무작정 들이대면서 기금을 조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다.
잘생긴 면접관은 면접자들에게, 일을 시작하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서,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구별해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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