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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1 - "Brilliant!"

 그는 쉐어하우스로 이사를 가는 중이다. 인스펙션(집 방문) 등 필요한 절차는 모두 끝났다. 크고 깨끗한 집은 아니지만, 방세가 싸고 보증금이 적으며 노티스도 짧다. 집주인은 남미계 남자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 그는 이사를 시작한다.

 

 이사 갈 집은, 그가 살던 백패커스와 약간 거리가 있다. 자전거로 40분 정도의 거리다. 그의 짐은 배낭 하나, 조그만 캐리어 하나, 자전거 하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자전거,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이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그는 어서 빨리 이사를 끝내버리고 싶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의 머리에서, 전구가 반짝인다.

 

 캐리어도 바퀴가 달려 있으니, 자전거를 타면서 캐리어 바퀴를 굴려 가면 되겠구나!

 

 그는 자신이 생각해낸 창의적 아이디어에 감탄한다.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다른 한 손은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바퀴로 끌었다. 캐리어 바퀴가 잘 굴러가면서, 이사의 속도가 빨라진다. 시간은 오후 1시, 햇빛이 매우 좋고 그의 기분도 매우 좋다.

 

 그가 이런 창의적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며 도심을 지난다. 길거리에 있던 한 펀드레이저는, 그를 보더니 "Brillinat!" 라고 외친다.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그도 이런 방법을 생각해낸 자신이 브릴리언트하다고 생각한다. 펀드레이저에게 웃음으로 화답한다. 하지만 이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잠시 뿐이었다. 그의 Brilliant한 생각을 캐리어가 견뎌내지 못한다.

 

 그가 가져온 조그맣고 저렴한 캐리어의 바퀴는, 공항의 매끄러운 바닥에는 어울렸으나 공항 바깥의 울퉁불퉁한 도보와 아스팔트 도로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캐리어의 조그만 바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닳으면서 축이 빠져버린다. 그는 당황한다.

 

 하지만 그때, 브릴리언트한 생각이 또 떠오른다. 그의 캐리어는 4개의 모서리에 바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그는 캐리어를 돌려 잡아, 반대편 바퀴를 이용한다. 그는 자신이 역시 Brilliant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편 바퀴도 5분을 못 버티고 닳아 빠져버린다.

 

 이미 집주인과 약속한 이삿날이고, 짐까지 다 싸서 나온 마당에 무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는 캐리어를 끌면서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달려버린다. 캐리어의 바퀴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바퀴 모양의 부위로 길바닥을 긁으면서, 질질 끌면서 가는 셈이다. 길바닥을 긁으면서 가는 것이니, 캐리어를 잡고 있는 팔의 팔꿈치가 아프다. 그는 팔을 바꿔가면서, 캐리어로 길바닥을 긁으며 달린다. 

 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길바닥에는 자전거 바퀴자국과 캐리어 몸통 자국이 선명하다. 혹시나 땅에 닿는 부분이 다 닳아서 뚫려버리지는 않을까, 그는 이따금 멈춰 서서 캐리어의 상태를 확인한다. 어느새 바퀴 모양의 부분 자체가 다 닳아서 없어졌다.

 

 길바닥을 긁는 캐리어의 마찰력은 대단했다. 캐리어와 길바닥의 마찰은, 그의 이사 시간을 몇 배로 지연시키기 시작한다. 그는 캐리어를 아예 들어보기도 하지만, 그가 온갖 물품을 압축해서 집어넣은 탓에, 캐리어의 무게는 약 15kg이다. 15kg을 한 손으로 든 채, 다른 손으로 유지하는 자전거의 균형은 오래가지 못한다. 설상가상, 이사 가는 집까지 언덕이 여럿이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린다. 그는 이제 사고를 멈추고, 캐리어와 자전거를 끌며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30~40분 거리를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다. 머리를 애매하게 써서 몸이 더 고생했다. 기다리던 집주인은,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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