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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2 - 공장 대기, 입성

 평일 오전, 그는 육가공 공장 밖에서 십여 명의 인원들과 같이 대기하고 있다. 기존의 직원이 그만두거나 휴가를 가는 경우, 대기하는 인원들 중 하나를 무작위로 데려간다. 대기하는 이들은 서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다. 이들을 관찰하며, 처음 일터 앞에서 자신을 데려가주길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은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그다.

 

 다들 아무 말이 없지만, 공장 직원이 나오면 신경전이 벌어진다. 직원에게 더 눈에 띄어 기회를 잡으려는 듯이, 그를 포함하여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두는 직원이 나오는지 예의주시한다. 하지만 이런 신경전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직원에게 먼저 뽑혀서 들어가는 인원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직원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공장 정문을 통과해 하얗고 네모난 건물들에 도착하니, 바로 일에 투입할 준비를 한다. 그를 포함해 3명이 함께 가는 것으로 보아, 3명의 직원이 나오지 않았나 보다. '신입'들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작업복(위아래 옷, 안전모, 장화)을 하나씩 가져온다. 탈의실 한 켠에는 작업복들이 종류별로 쌓여 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난 후, 탈의실에서 나가면서 마스크와 귀마개까지 착용한다. 그는 작업복을 하나씩 입을수록, 로봇 부품으로 무장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일반 노동자가 입는 작업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이다. 높이 올라오는 장화 때문에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하얀 로봇인 것 같기도, 하얀 스머프인 것 같기도 하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모두 같은 복장으로, 모두 하얀 로봇이며 하얀 스머프다. 이들을 관리하는 감독관(Supervisor)만이 구분되는 색을 가지고 있는데, 감독관은 파란색 안전모를 쓴다. 

 

 직원의 인솔 하에, 그를 비롯한 3명은 기나긴 통로를 통해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처음 얼마 동안은 조그만 창문으로 바깥의 하늘을 볼 수 있으나, 곧 창문 자체가 없어지면서 바깥세상과 단절된다. 그제야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는 실감이 난다. 창문이 없기에, 건물 어느 부분에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지하인지, 지상인지, 건물 중심부인지 주변부인지 도통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직원이 어느 문을 열자, 세척실 같은 공간이 나온다. 장화 바닥을 세척하고 손 세정제를 뿌린다. 직원은 복장 상태를 점검한다. 복장 점검을 끝내고, 직원은 들어온 쪽과 반대에 있는 문을 연다. 

 

 귀마개를 꼈는데도 귀를 찌르는 기계음과 함께, 영화에서나 보던 공장 내부의 모습이 펼쳐진다. 굉장히 넓은 공간이다. 은색, 회색이 뒤섞인 커다란 기계와 컨베이어 벨트가 구석구석 뻗어 있고, 온몸이 하얀 사람들이 기계와 컨베이어 벨트에 달라붙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 날, 이 공간의 어딘가에서 3인분의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그는 그중 1인분을 제공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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