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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3 - 사수

 직원은 관리자(Supervisor)가 있는 곳으로 그와 신입들을 데려간다. 관리자가 있는 곳은 유리로 된 큰 창이 있어서, 공장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신입들은 가만히 서 있고, 직원과 관리자가 말을 주고받는다. 신입들은 귀마개를 하고 있어서 어리숙한 상태다. 직원은 할 일을 마치고, 홀로 어딘가로 떠난다. 신입들은 이제 관리자에게 속한다. 관리자는 종이 몇 장을 주며, 서명을 하라고 말한다. 서명을 하고 난 뒤, 관리자는 신입들을 데리고 나가 인력이 부족한 곳에 투입시킨다.


 그는 큰 파이프가 6개 정도 모여있는 구역에 배치된다. 관리자는 그를,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람 뒤에 데려다 놓더니 사라진다. 일하고 있던 사람이 그를 본다. 사수다. 그는 오늘 이 사수를 도와 일을 할 것이다. 수직적 관계의 사수는 아니다. 일이 바쁘긴 하나 단순 반복이라, 사수가 약간만 알려주면 바로 따라 할 수 있다. 귀마개 때문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사수가 몸으로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다.


 그가 일하는 구역은 약 2.5m 높이의 굵은 파이프 6개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줄줄이 모여 있다. 2.5m 위에서는, 또다른 컨베이어 벨트에 노동자들이 달라붙어, 고기를 부위별로 분류해서 정해진 파이프로 던지고 있다. 그와 사수를 비롯한 파이프 배출구 아래의 노동자들은, 파이프를 따라 내려온 고기를 박스에 포장하는 일을 한다.


 다른 노동자들은 각자 하나의 파이프를 담당해서 포장하고 있는데, 그의 사수는 이상하게 2개의 파이프를 담당하고 있다. 하나는 살코기, 하나는 지방이다. 그는 사수를 도와,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고기를 포장한다. 식당 런치 타임처럼, 공장에도 물량이 넘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포장하는 속도가 고기의 물량을 따라가지 못해서, 2.5m 높이의 굵은 파이프들이 모두 고기로 미어터지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윗 단에서 고기를 분류해서 파이프에 넣는 노동자들은, 파이프 아래의 노동자들에게 빨리빨리 하라며,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욕을 한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점심시간이다. 점심 종소리가 울리자, 모든 노동자들이 일시에 공장 밖 휴게실로 빠져나간다. 그는 그제야 귀마개를 빼고 사수를 마주한다. 사수는 한국인이다. 얘기를 나눠보니 사수는 그보다 나이가 많다. 그래도 사수는 말을 놓지 않는다. 매너가 좋은 것인지, 그와 친해질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애매하다.


 그는 공장이 처음이라, 도시락을 싸와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도시락 없이 멀뚱멀뚱 다른 이들이 먹는 것을 구경한다. 사수와 다른 한국인이, 그에게 라면과 반찬을 조금 나눠준다.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하며 맛있게 먹는다. 쉬면서 이야기를 해보니, 사수는 농장에서 일하다가 왔다고 한다. 옆의 다른 한국인이, 사수가 농장에서 '탑 피커'였다고 한다. 호주 농장은 개인 수확량의 무게를 재서 순위를 공개하며, 무게에 따라 돈을 지급한다. 때문에 모두 수확량을 늘리려 열을 올린다. '탑 피커'는 그 농장의 수확량 1등에게 부여되는 칭호다. 그는 사수의 노동력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런 사수조차도, 이 공장이 힘들다고 말한다. 사수와 옆의 한국인은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사수는 그에게, 이 공장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노동자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일은 변함이 없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종이 울린다. 오전 조의 노동자들은 나가고, 오후 조의 새로운 노동자들이 들어온다. 같이 점심을 먹었던 사수와 다른 한국인은 종이 치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이날 이후 사수와 그 한국인을 한 두 차례 더 보고, 다시는 보지 못했다. 사수가 일하던 자리는 그의 자리가 된다. 그는 사수가 맡았던 2개의 파이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기뻤으나, 곧 사수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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