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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4 - 고기 포장

 그는 자전거를 타고 공장에 출근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세척실에서 세척을 한 뒤, 자신의 구역으로 간다. 그는 두 개의 파이프에서 내려오는 고기를 맨손으로 포장한다. 하나는 살코기, 하나는 지방이다. 공장은 고기의 신선도를 위해 항상 냉장고 같은 온도를 유지한다. 공장은 춥고, 맨손으로 만지는 고기도 차갑다.


 공장은 숫자에 민감하다. 그는 포장하는 고기의 무게를 소수점 단위까지 맞춰야 한다. 무게가 정량 범위를 초과하거나 미달할 경우, 그가 컨베이어 벨트로 내보낸 박스는 어김없이 그에게 반환된다. 무게가 맞지 않는 박스를 가져오는 이도 같은 노동자이지만, 왠지 목소리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살코기의 경우 무게를 맞추기 위해 칼을 쓴다. 생고기의 질긴 정도는,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칼을 가지러 가기조차 바쁠 때, 그가 고기 조각을 손으로 떼어내려 했으나 항상 실패한다. 반드시 칼을 써야 하며, 칼은 상당히 날카롭다. 파이프 아래에서 고기를 포장하는 이들은 칼을 쓰긴 했으나, 그들이 소유하는 칼은 아니다. 칼을 다루는 이들은 긴 숙련기간을 거친 이들 뿐이다. 그와 파이프 아래 노동자들이 쓰는 칼은 공동 소유인 셈이자, 숙련자들의 점검이 필요한 칼이다.


 지방의 경우는 다르다. 살코기는 밀도가 높아 무겁고, 지방은 밀도가 낮아 상당히 가볍다. 포장에 있어서는 지방이 살코기보다 번거롭다. 살코기는 무겁기 때문에 박스에 가득 담으면 얼추 무게가 맞는다. 하지만 가벼운 지방은, 최대한 압축해서 꾹꾹 눌러 담아야 무게가 맞는다. 박스 높이에 맞게 눌러서 담지 않으면,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다가 위아래 폭이 좁은 구간에서 삐져나온 지방이 끼어버린다. 그러면 해당 컨베이어 벨트가 전부 마비된다. 지방을 포장하는 이는 그밖에 없으므로, 모든 비난은 그에게 쏠린다.


 욕먹기 싫으니, 그는 박스 높이에 맞게 꾹꾹 눌러서 담는다. 쉽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를 위해서는, 지방을 온 힘을 다해 찍어 눌러야 한다. 지방도 나름의 부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압축하려면 단순히 손으로는 안 된다. 팔짱 끼듯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고, 상체를 구부린다. 체중을 실어서 팔꿈치로 눌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방이 제대로 눌리면서 부피가 줄어든다.

 


 물량이 많을 때는 컨베이어 벨트가 막혀서, 포장을 해도 컨베이어 벨트에 실을 수가 없다. 그럴 때는 그와 파이프 아래 노동자들이 팔레트를 가져와 깔고, 포장된 박스를 쌓아 올렸다. 컨베이어 벨트의 정체가 해소되면 포장은 포장대로 하면서, 팔레트에 쌓여있던 박스들도 컨베이어 벨트로 보냈다.


 그는 사수가 했던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는다. 이 공장에서 열심히 일할 필요는 없다. 열심히 일할수록, 관리자들의 기대치만 높아진다. 어제는 그렇게 했으면서 오늘은 왜 못하느냐, 이전 사람은 혼자서 다 했는데 왜 못하느냐는 식이다. 일 잘하는 노동자를 눈여겨보았다가, 다른 이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더 힘든 파트로 보내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그는 생각했다.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더 고생할 뿐이다. 어차피 공장의 시급은 하는 일에 상관없이 같다.


 하지만 그는 이미 키친핸드 직업을 거의 그만둔 상태다. 싫으나 좋으나 이제 공장이 그의 주요 수입원이다. 그의 불만은 계속 쌓였지만, 그는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는 어서 교대 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고기를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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