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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5 - 지하철

 그의 숙소에서 공장까지는 10km 거리다. 그는 매일, 대략 경복궁에서 당산까지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린다. 공장에 갈 때는 내리막이라 수월한데, 오히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오르막이 힘들다. 그래서 그는 지하철을 타 본다.

 

 브리즈번의 대중교통은 지하철과 버스, 트램, 페리가 있다.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서는 Go카드라는 것을 충전해야 한다. Go카드는 브리즈번의 티머니 카드인 셈이다. 호주는 주마다 교통카드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주에 속해 있는 브리즈번, 시드니, 멜버른의 교통카드는 모두 제각각이다. 

 

 호주의 지하철은 개찰구가 없는 곳이 많다. 도심 지하철역은 당연히 한국처럼 개찰구가 있다. 하지만 공장은 외곽에 위치한다. 외곽으로 나갈수록 역에는 개찰구가 없다. 역으로 그냥 걸어 들어가서, 플랫폼 중간 즈음 설치되어 있는 카드기에 카드를 찍고 타는 구조다. 지하철 문도 다르다. 한국처럼 모든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문 옆의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 내리는 사람이 없어 안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는데, 밖에서도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냥 있으면 지하철 문이 열리지 않는다.

 

 지하철 요금은 3불~4불 사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타국에서 돈을 절약하고자 하는 워홀러들에게는 은근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공장을 출퇴근할 시 하루 왕복에 7~8불, 일주일이면 50~60불에 가까운 금액이 지하철 요금으로 나간다.

 

 개찰구가 없고 감시하는 직원도 없으므로, 지하철 운임 지불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의 양심에 달려 있다. 물론, 가끔씩 지하철 내에서 직원이 돌아다니며 검사를 하긴 한다. 교통카드를 그들의 검사기에 찍었는데 운임 지불 내역이 없으면 해당 승객은 부정승차로 간주, 운임의 100배를 벌금으로 징수한다. 100배이니 벌금은 300불이 넘는 금액이다. 한 번이라도 걸리면 그동안 무임승차로 절약했던 돈을 모두 뱉어내는 셈이다. 하지만 외곽 지역에서, 검사원을 보는 것은 꽤 희귀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장에서 지하철역 1~2개 거리에 밀집한 주거지촌에서 사는 워홀러 중에는 지하철 운임을 내지 않고 타는 이들이 있었다. 어차피 지하철로 한 두 정거장밖에 가지 않는데, 운임이 꽤 비싸다. 한두 정거장 가는 동안 검사원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아니 거의 없다. 돈도 아끼고, 해 볼 만하다.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이들이, 그렇게 지하철을 무료로 탄다.

 

 그도 지하철을 몇 번 타보면서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카드를 찍지 않고 타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 그는 무임승차하는 이들을 경멸한다. 자신은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며, 비양심적인 무임승차자들이 반드시 검문에 걸려서 100배의 벌금을 지불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검사원은 오지 않는다.

 

 그는 사실 배가 아팠다. 그도 개찰구 없는 지하철을 보며, 무임승차에 대한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꼬박꼬박 카드를 찍고 지하철을 탄 이유는 둘이다. 공공시스템에 대한 시민의 양심이 그 중 하나이나, 이는 매우 미약한 부분이다.

 그가 무임승차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살아온 인생과 이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경찰을 만났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 더 크다. 그가 자신의 운이 평균 정도라고만 생각했더라도, 그는 다른 이들처럼 무임승차하며 기뻐했으리라. 그는 자신의 운이 나쁜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이 무임승차를 하더라도, 그가 무임승차를 할 때에는 갑자기 검사원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가 살아온 인생은 그다지 운이 따라주는 편이 아니었다. 경품 당첨이나, 모르는 문제를 찍어서 맞추는 등의 행운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마음 편히 하는 일탈도, 그가 할 때는 갑자기 감시자가 나타나는 등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그는 인생에서 요행이나 운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무임승차자들과 같이, 그가 가지지 못한 운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그는 무임승차자들이 초조하게 가슴 졸이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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