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미 여러 차례 숙소를 옮겼다. 이번에 머무는 숙소는 남미인 2명, 유럽인 1명과 쓰는 쉐어하우스다. 공장에서 일할 때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 쉐어하우스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숙소에는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다. 인스펙션을 할 때, 집주인은 이 집에 베드버그(bedbug)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집에 비해 세가 싼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베드버그는 번역하면 빈대다. '빈대 잡다가 초가 삼간 다 태운다' 라는 속담의 그 빈대다. 베드버그는 침대와 같은 천에서 사는데, 사람을 물어서 피를 빨아먹는다. 물린 곳은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그는 가려움 따위는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집주인에게 문제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는 이 집에 입주했다. 그리고 역시나, 베드버그가 그의 몸을 물기 시작한다.
베드버그는 그의 팔, 다리, 배 등 전신을 가리지 않고 물었다. 가려움은 어느 정도 참을만했다. 그는 가려움에는 약간의 내성이 있다. 그와 달리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쉐어메이트들은 항상 몸을 긁적이고 있다. 어떤 쉐어메이트는 얼굴을 물려서, 얼굴을 긁적이곤 했다.
베드버그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모르나, 위생이 어느 정도 관여하는 듯하다. 이 집은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설거지통에 설거지가 항상 쌓여 있다. 그가 쌓인 설거지를 치워보기도 했으나, 다른 쉐어메이트들이 그릇을 쓰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 결국 다시 쌓인다. 그도 이내 포기하고, 쉐어메이트들의 방식에 적응한다. 이 집에서는 설거지통에 항상 설거지가 쌓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식사를 할 때마다 설거지통에서 그릇을 씻어서 식사하고, 식사한 뒤에는 그대로 다시 설거지통에 쌓아둔다.
그는 지하철을 이용하긴 했으나 주로 자전거를 탔으므로, 아침 일찍 공장에 나가 저녁에 들어온다. 그래서 룸메이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룸메이트들도 다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보인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중,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의 오른쪽 다리 베드버그 물린 자리들에서 고름이 차오른다. 그가 쉐어메이트들을 봐도, 구글에 베드버그 관련 검색을 해도, 고름이 차는 경우는 없었다. 그는 쉐어메이트들에 비해서 심하게 긁지도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고름을 짠다. 그는 직접 고름이나 여드름 짜는 것을 좋아하고, 고름이나 여드름 짜는 영상도 좋아한다. 그런데, 고름을 짜도 고름이 시원하게 터져나오질 않는다. 시원하게 터져나오진 않고, 아프기만 하다. 그는 아픔보다는, 고름이 제대로 터져 나오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난다.
그렇게 배드버그와 같이 살며, 오른쪽 다리의 고름을 짜내며, 공장에 다니며 생활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머리가 띵하고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몸살 기운인 듯하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어질어질하다. 그는 공장에 나가지 않는 날,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이고 잠만 잤다. 자고 일어나니 그의 몸에는 식은땀이 나 있지만, 머리가 조금 맑아진 느낌이다. 그가 호주에 온 이후로 처음 겪는 몸살 기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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