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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9 - 감염

 그는 의사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베드버그에 물린 다리가 이런 상태다. 원래는 병원에 오지 않으려 했는데, 다리에 통증이 생겨 오게 되었다. 원인이 무엇인지 한 번 보려고 왔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비싼 처방은 무시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다리를 살펴본 의사가 입을 연다. 담담한 어투지만 그를 혼내는 내용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지금 오른쪽 다리는 감염된 상태다. 여기 감염균이 다리 핏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지 않느냐. 만일 이 감염균이 계속 올라가서 뇌까지 도달했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다리를 처음으로 제대로 살펴본다. 의사의 말대로, 푸르러야 할 다리 정맥을 타고 붉은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다. 붉은 감염균은 어느새 그의 오른쪽 무릎을 넘어 사타구니로 향하고 있다. 그는 이를 병원에 와서 처음 보았다. 

 

 의사의 진단을 듣고 나니, 모든 상황과 증상이 명쾌하게 설명된다. 베드버그에 물린 곳은 많지만, 고름이 차오른 부분은 감염된 오른쪽 다리뿐이다. 의사가 그의 오른쪽 다리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누른다. 감염균으로 인해 빨갛게 변한 핏줄 주변을 누르자, 그를 괴롭혔던 원인모를 통증이 느껴진다. 다리의 통증은, 감염균으로 붉게 변한 핏줄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가 몸살 기운이라 생각했던 식은땀도 감염균에 대한 몸의 면역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만일 몇 주 더 고집부리면서 참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저 빨간 감염균이 핏줄을 타고 뇌까지 올라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핏줄을 타고 올라오는 빨간 감염균이 징그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맨손으로 고기를 만지는 육가공 공장에서 어떤 균에 감염된 것이리라.

 

 의사는 그에게, 맞는 주사와 먹는 항생제를 처방한다. 만일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다면, 입원을 해야하며 입원비는 하루 1000불이라고 한다. 하루 입원비 1000불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 그는 눈앞이 깜깜하다. 약이 꼭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그다.

 

 모든 상황과 증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진단에, 의사에 대한 그의 신뢰가 크게 상승한다. 그는 엉덩이에 맞는 주사와 일주일치 약으로 100불을 지불한다. 원래 그의 고집대로였으면 거부했을 처방과 금액이다.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는다. 그는 자신이 호주까지 와서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구나 생각한다. 주사는 따끔하다. 간호사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약을 하루 3번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먹는다. 그리고 문제의 원흉으로 보이는 베드버그가 득실거리는 집과, 균이 득실거리는 육가공 공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집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육가공 공장은 그냥 나가지 않는다.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 그의 오른쪽 다리 정맥은 다시 푸른빛을 되찾았다. 육안으로 보이던 붉은 감염균은 사라졌고, 통증도 조금 가라앉았다. 입원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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