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청소 공고는 약 40명의 인원을 모집했다. 그가 문자를 넣으니, 출발할 날짜, 시간, 장소가 답장으로 온다. 한인잡이라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대자연 속에서 청소하는 일이니 베드버그에 물린 다리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 삼는다.
이벤트 청소는 4박 5일의 일정이다. 4박 5일 동안, 저 멀리 초원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에서 청소를 한다. 그는 이벤트 청소가 끝나는 날 입주할 집을 찾는다. 한인 쉐어하우스다. 인스펙션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을 깐깐하게 보지 않는다. 베드버그만 없으면 된다. 입주는 그가 이벤트 청소에서 돌아온 직후로 잡는다.
문자로 안내받은 날짜가 되고, 준비가 끝났다. 요양을 갈 시간이다. 그는 모든 짐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집합 장소로 간다. 집합 장소에는 많은 한인 워홀러들이 모여 있다. 장소는 주차장 같은 넓은 공터다. 그가 도착한 이후에도 한인 워홀러들이 속속 도착하는데, 주로 차를 타고 오는 이들이 많다. 차를 탄 이들은 하나같이 썬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는 차를 타고 썬글라스를 낀 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아니꼽기도 하다. 한인 워홀러들은 서로가 한눈에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인사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는다. 호주라는 장소,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가 만들어낸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약속 시간이 되자, 40인승 버스가 도착하고 한 남자가 내린다. 이 남자가 공고를 올린 사람이다. 안정환 선수를 닮은 잘 생긴 얼굴이다. 안정환 선수를 닮은 남자는, 긴 곱슬 머리, 구릿빛 피부에 멋있게 자란 수염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버스 앞에 서서, 이름을 호명한다. 호명된 이들이 대답하며 줄을 선다. 그 모습은 그에게, 군대를 연상케 한다. 공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호명되어 버스에 탑승한다. 공고를 올린 남자를 비롯해 일을 하려고 온 워홀러들까지, 버스에 탄 40여명은 모두 한국인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안정환 선수를 닮은 남자는 버스 복도 한가운데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이 모습을 보며, 가이드와 함께 관광버스에 탄 느낌이 든다. 안정환 선수를 닮은 남자는 자신이 30대 중반이며 매니저 형이라 부르라고 한다. 매니저는 전체 일정과 도착해서 할 일을 이야기한다. 그는 한 귀로 흘려들으며 창 밖을 본다. 버스가 브리즈번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있다. 앞으로 닥칠 일은 알지 못한 채, 그는 기분이 좋다. 다리가 조금 낫긴 했으나 아직 붓기는 그대로다. 그는 이번 기회에, 요양을 하면서 돈도 벌고 다리를 완치해서 오겠다는, 일석삼조의 부푼 꿈을 꾸고 있다.
결과는 그가 예상한 바와 비슷하게 흘러갔으나, 요양하는 과정은 그의 예상과 거리가 멀었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43 - 페스티벌 (0) | 2021.07.08 |
---|---|
42 - 버스, 자연 (0) | 2021.07.06 |
40 - 햇빛 좋은 곳 (0) | 2021.07.05 |
39 - 감염 (0) | 2021.07.03 |
38 - 한인 병원 (0) | 2021.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