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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43 - 페스티벌

 버스는 어느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 도착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호주의 대자연 한가운데다. 도시 근교나 관광지가 아니다. 오면서 보았던 대자연 아무 곳에 무작위로, 갑자기 덩그러니 페스티벌을 연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엄청난 수의 텐트가 있을 뿐이다. 조그만 텐트가 수없이 밀집해 있는 곳, 그리고 저 멀리 커다란 텐트(천막)들이 보인다. 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쨌든 자연 속에서 다리를 치유하겠다는 목적에는 부합하는 셈이다.

 


 페스티벌은 무슨무슨 뮤직 페스티벌이다. 그는 뮤직 페스티벌에 생전 처음 와본다. 가끔 메탈 밴드나 락 밴드가 공연하는 영상을 인터넷으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는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커다란 공연장 하나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이 뮤직 페스티벌은, 넓은 대지에 여러 규모의 스테이지가 산재해 있다. 인터넷에서나 봤던 큰 공연장도 있고, 소규모 연극 무대 같은 작은 공연장도 있다. 크기가 다른 공연장들이 10개가 넘게 산재해 있는데, 거리도 꽤 멀찍이 떨어져 있어 각 공연의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10개가 넘는 공연장들이 멀찍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당연히 이 페스티벌 전체 대지 규모는 상당하다. 남이섬 하나 크기의 대지를 통째로 페스티벌장으로 만든 셈이다. 남이섬 전체, 에버랜드 전체에 버금가는 크기 정도라고 표현하면 되겠다. 페스티벌장 안에는 에버랜드처럼 크고 작은 언덕, 여러 개의 평지가 존재한다. 가장 넓은 메인 도보는, 12명 이상의 인원이 넉넉하게 일렬로 서서 걸어갈 수 있으니 폭이 15m가 넘는다. 메인 도보에서 크고 작은 도보가 갈라져 나온다. 도보는 주로 공연장이나 야외 푸드 코트로 이어진다. 푸드 코트는 10개가 넘는 임시 상점들이 음식을 팔고 있다. 당연히 이 음식 상점들 옆에는, 수 십 개의 나무 벤치가 모여 있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이들은 음식을 사서 벤치에 앉아 먹는다. 화장실은 구석구석에 많다.


 텐트촌도 보인다. 페스티벌장 바깥의 텐트촌이 사람들의 숙소다. 텐트는 크기와 종류가 다양하며, 대부분의 페스티벌 참가 인원들은 자동차 옆에 텐트를 친다. 텐트가 깔끔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하나같이 손때가 묻고 차와 연결하여 텐트의 공간을 극대화했다. 그는 텐트 속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적어도 이곳의 사람들은 상당히 캠핑에 익숙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추산이 되지 않는다. 텐트가 너무 많고 구석구석 자신들이 마음대로 자리를 정하는 텐트도 수두룩하다. 그는 최소 몇백, 아니 몇천의 인원들이 있을 것이라 어림짐작한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전부 백인이다. 그가 이 페스티벌에서 청소하는 4박 5일간, 적어도 그의 눈으로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비백인을 본 기억은 없다.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측과 즐기는 측 모두 백인이다. 그와 함께 온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이곳에 존재하는 비백인이다. 한국인들은 이곳에 청소를 하러 왔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수백수천의 인원들이 음악을 듣고 페스티벌을 즐기며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면, 그를 포함한 40여 명이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누어 쓰레기를 치웠다. 40여 명으로 이루어진 주간조와 야간조를 통제하는 사람은, 공고를 올린 한국인 매니저다. 한국인 매니저는 페스티벌 주최 측에 속해 있는 것인지, 주최 측이 외주를 준 것인지, 무전기를 들고 주최 측 백인들과 무전을 했다. 정황을 볼 때, 주최 측 백인이 한국인 매니저보다 더 직위가 높은 듯하다. 무전에서 들려오는 말은, 어디어디가 쓰레기가 많으니 가서 치워달라는 식이다. 매니저는 스타렉스 같은 승합차에 그와 워홀러들을 태워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쓰레기를 치운다.

 


  백인이 주최하고, 백인이 즐기고, 한국인이 쓰레기를 치운다. 얼핏 보면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리는 계급 사회같은 느낌이지만,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이 페스티벌 한 곳에서 보이는 사례, 그의 눈에 얼핏 보이는 현상만을 토대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백인들이 먹고 즐기는 사이, 한국인 워홀러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식의 자학적 생각은 근거도 충분하지 않고, 자존감에든 무엇에든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 피해망상이다. 그는 목적이 다르다고 결론짓는다. 이곳에 모인 백인들은 즐기는 데에 더 비중을 두었고, 이곳에 모인 그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돈을 버는 데에 비중을 두었다. 단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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