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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44 - 이벤트 청소(1)

 페스티벌에서 청소를 한다. 공고에 적혀 있던 '이벤트 청소'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페스티벌이라는 이벤트에서 청소를 한다는 것이리라.


 40여 명의 워홀러들은 두 개의 조로 나뉜다. 주간조와 야간조다.주간조 (오전 8시 ~ 저녁 8시) - 약 25명, 페스티벌이 시작부터 한창때인 낮과 밤까지 청소를 한다. 엄청난 쓰레기를 감당해아하며, 햇빛이 따갑고 더워 모자를 쓴다.야간조 (저녁 8시 ~ 아침 8시) - 약 15명, 페스티벌 마감 즈음부터 새벽동안 청소를 한다. 아침까지 페스티벌장을 다시 깔끔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밤에는 비가 온다.  


 주간조와 야간조 모두 힘들며, 누구의 일이 더 힘들거나 편하다 할 수 없다. 그는 야간조에 속한다. 일을 시작하고 난 뒤, 그는 주간조 인원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야간조의 시간이 끝나면 그는 잠을 자야했고, 주간조는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처음 페스티벌장에 도착만 함께 했을 뿐, 주간조와 야간조는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고 4박 5일의 청소가 끝난 후 복귀도 따로 했다.


  도착해서 텐트를 배정받고, 짐 정리를 하고, 간단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은 파스타와 샐러드 등의 메뉴다. 그는 신이 나서 양껏 먹는다. 다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영양을 잘 섭취해야 한다. 텐트는 2명이 같이 썼고, 같이 쓰는 2명은 일할 때 같은 조다. 일할 때, 이 2명은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 전우조와 같은 느낌이다. 그는 사실 브리즈번에서 출발할 때부터, 돌아가는 모습이 군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저녁 7시, 야간조가 출발한다. 야간조와 매니저는 페스티벌장 구석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시 대기한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샐러드와 볶음밥, 파스타 등의 간식이 주어진다. 한국의 편의점 샌드위치 같은 느낌이다. 다른 인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보였으나, 그는 주어지는 음식은 맛이 어떻든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때로 다른 인원이 가져가지 않아 남는 분량의 음식이 있으면, 그는 모두에게 물어본 뒤 그 음식까지 먹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그가 이렇게까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적이 없으므로, 그는 그저 만족스럽다. 그와 함께 청소했던 워홀러 중 한 명은, 그의 먹는 양이 경이로울 정도였다고 나중에 말한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야간조가 투입되면 비가 내렸다. 첫날, 그를 포함한 6명의 워홀러와 매니저가 일을 하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 잠시 천막 아래로 피했다. 비를 피하는 동안, 매니저가 같이 있던 6명의 워홀러 중 한 명에게 조곤조곤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혼내는 내용이다.


 OO아, 표정이 왜 그래? 일하기 싫어? 일하기 싫으면 집으로 가. 아니 텐트 들어가서 쉬어. 쉬어도 괜찮다니까? 아까부터 표정이 그게 뭐야? 힘들어? 겨우 이거 갖고 힘들어? 힘들면 관둬. 너 말고 사람 많다니까? 주간조로 보내줄까? 아니 그냥 차 태워줄 테니까 집으로 가지 그래? 진짜 내가 너 아까부터 하는 거 보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식으로 하면 못 버텨. 포기하려면 빨리 포기해. 표정이 왜 그래?...


 매니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그는 안정환을 닮은 잘 생긴 매니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혼나는 워홀러가 무언가 잘못했거나 예의바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계속하면서, 비를 피해 쉴 때마다 매니저가 두 세명의 인원을 돌아가며 똑같은 레퍼토리로 갈구기 시작한다.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한다. 그가 같이 일을 하면서, 다른 워홀러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에서 그다지 예의가 없거나 굼뜬 점은 볼 수 없었다. 그는 매니저에게 혼나는 이들, 그리고 혼나는 이들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다른 워홀러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워홀러들의 표정은, 처음에는 짜증나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매니저가 구사하는 뫼비우스의 띠 갈굼법에, 워홀러들은 점점 표정이 없어지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안정환 선수를 닮은 잘생긴 매니저는, 그를 포함한 6명의 워홀러 모두를 그런 표정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매니저가 구사하는 갈굼법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어디서 들어본 것일까. 생각하는 동안에도 워홀러들이 돌아가면서 갈굼을 당한다. 그제서야, 그는 매니저의 말투가 왜 이렇게 익숙한지 깨닫는다. 매니저가 구사하는 말투는, 군대에서 행정보급관이 구사하는 말투다. 그가 군대에 있던 기간 내내, 그토록 치를 떨었던 행정보급관의 말투다! 매니저는 젊고 생긴 것은 잘생겼으나, 그 속내와 말투는 행정보급관의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다. 그는 자신이 치를 떨었던 그 말투를, 잠시나마 잊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그가 함께 가야 할 사람은 매니저가 아닌 워홀러들이다.


 그는 이를 인식한 시점부터, 피아식별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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