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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54 - 공장(4)

 가축화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무서운 것이다. 가축들은 그가 철장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그를 피해서 반대쪽 철장에 우글우글 몸을 붙이며 모인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가축들은 반대로 움직이며 거리를 유지한다. 가축들은 그를 비롯한 '인간'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는 이 상황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포함한 인간들은, 가축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뒷걸음질에도 깔려 죽을 수 있다. 그만큼 가축은 강하고,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가축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완전히 가축화되었다. 그는 혹시나 가축이 날뛰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이 이 가축에게 다칠 일은 없다. 그도 나중에는 가축에 대한 겁이 사라졌다. 

 

 다만, 가축들이 그를 바라볼 때의 눈빛만은 잊혀지지 않는다. 가축들은 그를 포함한 공장 노동자들을 계속 주시했다. 그는 가축과 눈싸움을 하려다가, 가축의 눈동자를 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축은 흰자 검은자가 없이 눈 전체가 검다. 무표정하게 그를 쳐다보는 가축의 검은 눈은 오묘하다. 공포에 찬 것인지 호기심에 찬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새까만 눈을 본 순간 그는 공포를 느낀다. 

 고기를 좋아하는 그이지만, 이때 처음으로 동물권 운동가나 채식주의자들이 소리지르며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되는 듯했다.

 

 

 

 

*이어지는 내용에는 가축 도살에 관한 묘사가 있습니다.

 

 

 

 

 Stockyard에서는 가축들을 씻기고, 관리하고, 마지막에는 공장 안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시간이 되면 그와 직원들은 질긴 천으로 만들어진 말총같은 것을 들고 가축들을 몬다. 모는 일은 쉽다. 가축들이 원체 사람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그 습성을 이용해서 공장 쪽으로 몰아넣는다. 

 공장 입구에 가까워지면, 가축들은 커다란 언덕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를 통과해야 한다. 시멘트 덩어리에 나 있는 길은 처음에는 넓지만 점점 좁아져, 가축들은 서로 떠밀려 들어가다가 결국 한 줄로 서게 된다. 그와 직원들은 시멘트 덩어리 위 안전지대로 올라가 가축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계속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가끔씩 앞으로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가축이 있으면, 관리자급 직원이 긴 막대기를 가져온다. 막대기 끝에는 전기충격기가 달려 있어서, 막대기로 가축의 엉덩이를 때리면 가축이 깜짝 놀라 앞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가축들은 밀고 떠밀리면서 공장 입구로 향한다.

 

 가축이 공장 건물 안에 들어가는 즉시 도살이 시작되며, 이곳이 Killing Field다. Killing Filed는 피가 낭자해서 Red Zone이라고도 불린다. 공장의 문은 자동 개폐식으로, 한 마리씩만 들어오게끔 하고 닫힌다. 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가축이 공장에 들어간 직후의 모든 과정을 보았다. 가축의 양 옆과 앞은 굳게 막혀 있다. 문이 닫히면서 뒤까지 막히면, 커다란 기계팔이 가축의 목을 붙잡는다. 가축이 몸부림치는 동안, 안전벽 뒤 높은 단에 위치한 직원이 육중한 공기총을 가축의 머리에 겨냥한다. 공기총이 발사되면, 가축의 몸부림이 떨림으로 바뀐다. 공기총의 탄에는 가스가 들어 있어, 머리에 격발할 시 가축을 즉사시킨다고 한다. 가축이 죽은 것이 확인되면 굳게 닫혀있던 옆문이 열리면서 가축이 그대로 공장 안으로 떨어진다. 기다리고 있던 Killing Field 직원들은 우선 숨통이 끊어진 가축의 멱을 따서 피를 뺀다. 동시에 두 다리에 고리를 걸어 거꾸로 매달아, 반으로 가르고 가죽을 벗기는 등의 작업을 시작한다. 일단 공장 내부로 가축이 들어가면, 도살부터 매달리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는 도살 과정을 보며, 직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낄 수 있는 구조라 생각했다. 가스총을 쏘는 직원은 사방의 시야가 막혀 있어서, 공기총을 쏘고 난 이후에는 그 가축을 볼 수 없다. 해당 직원 입장에서는, 들어오면 쏘고 내보내고 / 들어오면 쏘고 내보내고를 반복할 뿐이다. 공기총도 위치만 손으로 조정할 뿐, 격발은 공기총과 이어져있는 다른 기계의 버튼을 누른다.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인지 채산성을 위해서인지, 도살 및 Killing field의 일들은 정확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그는 처음 보는 광경이 신기했지만, 보고 있을수록 알 수 없는 감정과 약간의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이날 이후 그는 굳이 소들을 몰아넣은 뒤의 과정을 보려 하지 않았다. 

 

 며칠 뒤, Stockyard의 기존 직원이 돌아와 그는 다시 대기 인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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