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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56 - "호주에 돈 벌러 왔어요"

 저는 다른 거 필요 없고, 돈 벌려고 호주 왔어요.

 

 그가 호주 워킹 기간 동안, 한국인 워홀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경멸했던 말이다. 그 자신조차도 현실과 타협해서 돈을 벌기로 작정하긴 했으나, 워킹 전체 기간을 통틀어 돈이 제1 목표였던 기간은 두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어쨌든 돈을 벌기로 작정한 시절의 그는, 속으로는 경멸하더라도 겉으로는 이를 반박할 위치가 아니다. 

 

 호주에 돈 벌러 왔다는 20대 청춘들이 왜 이리 많을까. 우선 앞의 글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호주의 높은 최저시급과 화폐가치가 첫 번째다. 시급이 높기 때문에 일을 할수록 돈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고, 열심히 일하면 20대 초중반의 한국인 워홀러들로서는 평생 만져보지 못한 금액을 벌 수 있다. 그렇게 목표액을 달성한 뒤에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돈을 버는 워홀러들도 많다. 

 

 두 번째, 이것이 그가 돈을 목표로 하는 워홀러를 경멸했던 이유인데, 다른 것들이 잘 되지 않아 도피한 선택지가 돈인 경우다. 애초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정도의 실천력과 상상력이 있는 이들은, 처음에는 다양한 것들을 꿈꾼다. 타국에서 새로운 경험도 해보고, 영어로 직접 소통하면서 친구도 사귀어보고, 그러다가 외국인 이성친구도 사귀어보고 싶고, 연고가 없는 곳에서 홀로서기도 해보고 싶다. 한국에서 워홀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다 필요없고 나는 돈만 벌어오겠다'고 생각하는 워홀러는 극히 드물다. '오로지 돈'을 추구하면서 이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배제하기에는, 20대의 시간과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가진 자유도가 너무 아깝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꿈과 목표들을 한꺼번에 이루겠다는 포부를 갖고 호주에 도착한 이들이, 왜 나중에는 하나같이 돈 벌러 왔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가 봤던 '나는 돈만 벌면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한인 워홀러 중,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워홀러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여러 꿈과 희망이 돈으로 바뀌는 경로가 쉽게 그려진다.

 

 호주 도착,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막상 도착하니, 일자리가 구해지질 않는다. 영어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보다.

 호주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다. 한인잡이나 영어를 쓰지 않는 공장일이라도 해야겠다.

 일터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니,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 일하고 나면 피곤하다.

 영어 공부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귀찮다.

 외국인 친구도, 다양한 경험도 물 건너간 듯하다.

 돈이나 벌자. 호주에서 돈만 벌어서 가도 이득이다.

 실컷 돈을 벌고 난 후, 워킹 비자가 끝날 때쯤 여행이나 하고 가자.

 

 이러한 식의 패턴을 그는 수없이 보았다. 심지어 어떤 한국인 워홀러는 호주에서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고, 호주 워홀이 끝나면 모은 돈을 가지고 필리핀에 영어 유학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럴 바엔 호주에 있는 지금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이익이 아닌가. 그의 질문에 워홀러는 이곳(호주)은 영어 공부할 여건이 안된다고 답했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무엇을 추구할지는 전적으로 워홀러 개인의 자유에 달렸다. 한인 워홀 커뮤니티에는, 돈을 정말 악착같이 모은 사람의 후기가 있다. 농장에서 수확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들 잠자는 시간에도 자동차 라이트를 켜놓고 농작물을 수확했다고 한다. 그렇게 2년 내내 여러 농장에서 잠을 아끼며 1억에 가까운 돈을 모았으며, 사업 자금으로 쓰겠다는 후기다. 대단하다. 그는 후기를 읽으면서 대단하다고는 느꼈지만, 그의 워킹 기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20대의 1년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며,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나 워홀러가 외국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1년은, 평생 다시없을 시간이다. 그러니 그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 한다. 여러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여 판단하기에 돈이 워킹홀리데이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응원한다. 

 

 그는 매주 나가는 집세-식비-기타 지출 등을 고려했을 때, 호주에서 악착같이 돈 모으는 것이 한국에서 악착같이 모으는 것에 비해 그리 편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집세도 들지 않고, 대중교통도 저렴하니, 한국에서 투잡 정도 뛰면 저축액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호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과 영어가 더 크고 값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으로 잠시 목표 전환을 했으니, 돈에 집중해야 한다. 그와 같이 기술이 없는 워홀러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가진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방법 뿐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쉬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줄여 돈과 맞바꾼다. 돈이 제1 목표인 시기 동안, 그는 일하고 밥 먹고 잠자기 바빴다. 무엇보다, 그의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면서 주변인들과의 다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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