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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58 - 협상, 거래

 이번 인스펙션은 거리도 멀다. 지하철로 40분 정도 거리다. 그는 부디 이번이 마지막 인스펙션이 되길 바란다. 장소는 브리즈번 외곽으로, 자동차 정비업체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도착해서 문자를 보내니, 상대방은 안으로 더 들어오라고 한다. 들어가니 두 명의 사람이 그를 맞이한다. 한 명이 차주, 다른 한 명은 차주의 친구이며 문자를 보낸 사람이다.


 차주는 영어가 아주 서툴다. 매우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하다. 그래서 차주의 친구가 대신 차를 팔아주려고 공고를 올린 것이다. 차주와 차주의 친구는 약 40대 중후반의 중동인으로 보인다. 차주의 친구가 의사소통을 담당해야 하지만, 정비 일이 들어왔다며 가버린다. 그는 차주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대화하기 시작한다. 차주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차주는 알아듣지 못한다. 천천히, 또박또박,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몇 차례 더 묻는다. 차주는 표정이 환해지면서 알아듣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펄시아! 라고 말한다. 그는 차주의 말이 페르시아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페르시아라니, 영화에서나 들었던 고대 국가 이름이 아닌가. 현지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페르시아로 인식하는가 보다. 그는 차주가 갑자기 신비롭게 느껴진다.


 차주는 그에게 차에 타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차에 타니, 차주가 시동을 걸고 차를 몬다. 영어로 의사소통할 때는 순박하고 어수룩해 보였는데,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차주는 차를 굉장히 터프하게 몬다. 정비소의 커다란 주차장을 한 바퀴 빙 돌더니, 그에게 운전대를 잡으라고 한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초보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운전석에 앉는다. 그리고 시동을 걸려는데, 시동이 걸리질 않는다. 그는 영문을 모른다. 차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조작을 잘못했나? 어느 쪽이든 자동차 고수인 척하려던 그의 계획은 완전히 날아갔다. 차주는 웃더니 손을 뻗어 기어를 P로 바꾼다. 그는 시동도 걸지 않고 기어를 D로 조작했던 것이다. 기어가 P에 있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차주는 웃으면서 그에게, P라고 말한다.


 인스펙션이 끝났다. 차에 큰 결함은 없어 보인다. 외관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도요타 캠리다. 그는 이제 인스펙션에 지쳤다. 어떻게든 차량 구입을 위한 여정을 끝내고 싶다. 곧바로 차주와 협상에 돌입한다. 협상하는 그와 차주 주변으로 정비소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는 1500불을 부른다. 차주는 펄쩍 뛴다. 3000은 받아야겠다고 한다. 3000은 너무 비싸다. 다시 그는 2000을, 차주는 2500을 부른다. 차이가 너무 크다. 그때, 보고 있던 한 정비소 사람이 개입한다. 그에게 2300은 안되겠냐고 묻는다. 그는 고민하다가, 2300도 괜찮다고 말한다. 정비소 사람이 차주에게 뭐라뭐라 하니, 차주가 OK 사인을 보낸다. 아뿔싸, 이대로 끝나선 안된다! 그는 급히 2200을 부른다.(그 자신이 생각해도 이는 조금 창피한 일이었다) 보고 있던 정비소 사람들이 일순간 에이~하는 소리를 낸다. 그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을 번복한다. 하지만 차주도 지쳤는지, 2200에 OK 사인을 보낸다. 거래가 성사됐다. 그는 거래가 성사됐음에도 기쁘지 않다. 속으로 계속 더 깎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는다. 처음부터 1300을 부를걸, 1700으로 버틸걸 하는 의미 없는 후회를 한다.


 그의 생각이 어떻든 거래는 성사됐다. 그와 차주는, 정비소 직원의 중재 하에 종이에 가계약서를 쓴다. 그는 사인만 하는 것이 불안해서, 옆에 있던 정비 공구에 묻은 기름으로 지장을 찍는다. 이를 보고 있던 차주는, 씩 웃으며 자신도 손가락에 기름을 묻혀 몇 번이고 꽝꽝 찍는다. 차주가 속으로 생각했던 금액이 얼마였는지, 차주가 그를 속인 점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차주는 이후 그와 함께 교통국으로 가서 명의 이전 등의 행정 절차를 함께 해주었다. 그는 의심이 가득하기도 했지만, 인상 좋은 아저씨 같은 차주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거래 성사 기념으로 그와 차주는 핸드폰으로 셀카를 한 장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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