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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44 - 이벤트 청소(1) 페스티벌에서 청소를 한다. 공고에 적혀 있던 '이벤트 청소'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페스티벌이라는 이벤트에서 청소를 한다는 것이리라. 40여 명의 워홀러들은 두 개의 조로 나뉜다. 주간조와 야간조다.주간조 (오전 8시 ~ 저녁 8시) - 약 25명, 페스티벌이 시작부터 한창때인 낮과 밤까지 청소를 한다. 엄청난 쓰레기를 감당해아하며, 햇빛이 따갑고 더워 모자를 쓴다.야간조 (저녁 8시 ~ 아침 8시) - 약 15명, 페스티벌 마감 즈음부터 새벽동안 청소를 한다. 아침까지 페스티벌장을 다시 깔끔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밤에는 비가 온다. 주간조와 야간조 모두 힘들며, 누구의 일이 더 힘들거나 편하다 할 수 없다. 그는 야간조에 속한다. 일을 시작하고 난 뒤, 그는 주간조 인원들을 거의 보지 못.. 더보기
43 - 페스티벌 버스는 어느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 도착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호주의 대자연 한가운데다. 도시 근교나 관광지가 아니다. 오면서 보았던 대자연 아무 곳에 무작위로, 갑자기 덩그러니 페스티벌을 연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엄청난 수의 텐트가 있을 뿐이다. 조그만 텐트가 수없이 밀집해 있는 곳, 그리고 저 멀리 커다란 텐트(천막)들이 보인다. 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쨌든 자연 속에서 다리를 치유하겠다는 목적에는 부합하는 셈이다. 페스티벌은 무슨무슨 뮤직 페스티벌이다. 그는 뮤직 페스티벌에 생전 처음 와본다. 가끔 메탈 밴드나 락 밴드가 공연하는 영상을 인터넷으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는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커다란 공연장 하나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 더보기
42 - 버스, 자연 버스는 브리즈번 남쪽으로 달린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는 브리즈번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브리즈번이 속한 퀸즐랜드(Queensland,QLD) 주의 끝자락이다. 퀸즐랜드 주와 뉴사우스웨일즈(NSW, 시드니가 속한 주) 주의 경계를 향해 버스는 달린다. 호주에 도착한 뒤로, 계속 브리즈번 중심지에만 머물렀다. 가끔씩 자전거로 나가봤자 브리즈번 외곽 정도였던 그다. 그런 그가 버스를 타고, 3시간 가까이 걸리는 새로운 장소로 가고 있다.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진다. 그는 원래부터 버스, 비행기, 기차 등을 좋아했다. 특히 그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그 설렘이 배가되곤 했다. 이는 그가 가진 특이한 인식 때문인 듯하다. 그는 교통수단 안에서 보내는 이동 시간을 '버려지는 시간'이라고 인식한다. 비행기.. 더보기
41 - 요양 이벤트 청소 공고는 약 40명의 인원을 모집했다. 그가 문자를 넣으니, 출발할 날짜, 시간, 장소가 답장으로 온다. 한인잡이라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대자연 속에서 청소하는 일이니 베드버그에 물린 다리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 삼는다. 이벤트 청소는 4박 5일의 일정이다. 4박 5일 동안, 저 멀리 초원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에서 청소를 한다. 그는 이벤트 청소가 끝나는 날 입주할 집을 찾는다. 한인 쉐어하우스다. 인스펙션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을 깐깐하게 보지 않는다. 베드버그만 없으면 된다. 입주는 그가 이벤트 청소에서 돌아온 직후로 잡는다. 문자로 안내받은 날짜가 되고, 준비가 끝났다. 요양을 갈 시간이다. 그는 모든 짐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집합 장소로 간다. .. 더보기
40 - 햇빛 좋은 곳 집주인은 그의 베드버그 이야기를 듣고 유감이라고(Sorry) 말한다. 그는 새로운 숙소를 찾으면 베드버그 하우스에서 당장 나가겠다고 말한다. 집주인은 노티스는 신경 쓰지 말라며, 보증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육가공 공장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처음 공장에 들어갈 때 인솔했던 직원 필립이다. 필립은 빈자리가 있다며, 오늘 일을 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는 이때, 머리가 갑자기 잘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전에 일하던 고기 포장 파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결근한 그다. 그런데 결근한 당일, 필립은 전화까지 해가며 그에게 일을 주려 한다. 그는 공장 내의 인력 관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약간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일단 필립에게 호감을 사 두어야 한다. 그는 자.. 더보기
39 - 감염 그는 의사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베드버그에 물린 다리가 이런 상태다. 원래는 병원에 오지 않으려 했는데, 다리에 통증이 생겨 오게 되었다. 원인이 무엇인지 한 번 보려고 왔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비싼 처방은 무시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다리를 살펴본 의사가 입을 연다. 담담한 어투지만 그를 혼내는 내용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지금 오른쪽 다리는 감염된 상태다. 여기 감염균이 다리 핏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지 않느냐. 만일 이 감염균이 계속 올라가서 뇌까지 도달했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다리를 처음으로 제대로 살펴본다. 의사의 말대로, 푸르러야 할 다리 정맥을 타고 붉은 무언가가 올라오고.. 더보기
38 - 한인 병원 그는 구글 맵으로, 브리즈번 시내의 병원을 검색한다. 한인 병원이 바로 눈에 보인다. 그는 망설이다가 한인 병원을 가기로 결정한다. 호주에서 한인을 피하니 어쩌니 하던 그도, 급할 때는 한인 병원을 찾는다. 구글 맵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한다. 친절한 목소리가 받는다. 그는 영어로 이야기할까 하다가, 자신의 다리를 본다. 영어 연습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다. 목소리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목소리는 한국말로 그렇다고 답한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이 언제까지 운영하는지 묻는다. 목소리는 친절하게, 저녁 늦게까지 운영하니 언제든 방문하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너무나도 기쁘다. 호주에서 저녁 늦게까지 운영하는 병원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예약 없이 바로 찾아갈.. 더보기
37 - 다리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호주에 온 뒤 바쁜 와중에도, 종종 밖에 나가 운동을 하곤 했다. 공장을 다니면서도 운운동을 한다. 공장 일에 적응하느라 체력을 쏟다 보니, 운동을 그리 강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여러 외국인을 만나는 등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고름이 차오른 오른쪽 다리가, 점점 그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고름이 차오른 곳이 발목 주위 두세 군데에서, 종아리로 올라오더니 10 군데 가까이로 늘어났다. 하나같이 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만지면 아팠다. 마침내 그는 운동을 하다가 오른쪽 다리가 아파, 운동을 끝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끝내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그러면서 짜증스럽게 다리를 살핀다. 같이 운동하던 외국인들도 그에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