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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35 - 지하철 그의 숙소에서 공장까지는 10km 거리다. 그는 매일, 대략 경복궁에서 당산까지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린다. 공장에 갈 때는 내리막이라 수월한데, 오히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오르막이 힘들다. 그래서 그는 지하철을 타 본다. 브리즈번의 대중교통은 지하철과 버스, 트램, 페리가 있다.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서는 Go카드라는 것을 충전해야 한다. Go카드는 브리즈번의 티머니 카드인 셈이다. 호주는 주마다 교통카드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주에 속해 있는 브리즈번, 시드니, 멜버른의 교통카드는 모두 제각각이다. 호주의 지하철은 개찰구가 없는 곳이 많다. 도심 지하철역은 당연히 한국처럼 개찰구가 있다. 하지만 공장은 외곽에 위치한다. 외곽으로 나갈수록 역.. 더보기
34 - 고기 포장 그는 자전거를 타고 공장에 출근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세척실에서 세척을 한 뒤, 자신의 구역으로 간다. 그는 두 개의 파이프에서 내려오는 고기를 맨손으로 포장한다. 하나는 살코기, 하나는 지방이다. 공장은 고기의 신선도를 위해 항상 냉장고 같은 온도를 유지한다. 공장은 춥고, 맨손으로 만지는 고기도 차갑다. 공장은 숫자에 민감하다. 그는 포장하는 고기의 무게를 소수점 단위까지 맞춰야 한다. 무게가 정량 범위를 초과하거나 미달할 경우, 그가 컨베이어 벨트로 내보낸 박스는 어김없이 그에게 반환된다. 무게가 맞지 않는 박스를 가져오는 이도 같은 노동자이지만, 왠지 목소리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살코기의 경우 무게를 맞추기 위해 칼을 쓴다. 생고기의 질긴 정도는,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지 .. 더보기
33 - 사수 직원은 관리자(Supervisor)가 있는 곳으로 그와 신입들을 데려간다. 관리자가 있는 곳은 유리로 된 큰 창이 있어서, 공장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신입들은 가만히 서 있고, 직원과 관리자가 말을 주고받는다. 신입들은 귀마개를 하고 있어서 어리숙한 상태다. 직원은 할 일을 마치고, 홀로 어딘가로 떠난다. 신입들은 이제 관리자에게 속한다. 관리자는 종이 몇 장을 주며, 서명을 하라고 말한다. 서명을 하고 난 뒤, 관리자는 신입들을 데리고 나가 인력이 부족한 곳에 투입시킨다. 그는 큰 파이프가 6개 정도 모여있는 구역에 배치된다. 관리자는 그를,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람 뒤에 데려다 놓더니 사라진다. 일하고 있던 사람이 그를 본다. 사수다. 그는 오늘 이 사수를 도와 일을 할 것이다. 수직적 관계의 사수.. 더보기
32 - 공장 대기, 입성 평일 오전, 그는 육가공 공장 밖에서 십여 명의 인원들과 같이 대기하고 있다. 기존의 직원이 그만두거나 휴가를 가는 경우, 대기하는 인원들 중 하나를 무작위로 데려간다. 대기하는 이들은 서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다. 이들을 관찰하며, 처음 일터 앞에서 자신을 데려가주길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은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그다. 다들 아무 말이 없지만, 공장 직원이 나오면 신경전이 벌어진다. 직원에게 더 눈에 띄어 기회를 잡으려는 듯이, 그를 포함하여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두는 직원이 나오는지 예의주시한다. 하지만 이런 신경전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직원에게 먼저 뽑혀서 들어가는 인원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직원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공장.. 더보기
31 - "Brilliant!" 그는 쉐어하우스로 이사를 가는 중이다. 인스펙션(집 방문) 등 필요한 절차는 모두 끝났다. 크고 깨끗한 집은 아니지만, 방세가 싸고 보증금이 적으며 노티스도 짧다. 집주인은 남미계 남자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 그는 이사를 시작한다. 이사 갈 집은, 그가 살던 백패커스와 약간 거리가 있다. 자전거로 40분 정도의 거리다. 그의 짐은 배낭 하나, 조그만 캐리어 하나, 자전거 하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자전거,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이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그는 어서 빨리 이사를 끝내버리고 싶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의 머리에서, 전구가 반짝인다. 캐리어도 바퀴가 달려 있으니, 자전거를 타면서 캐리어 바퀴를 굴려 가면 되겠구나! 그는 자신이 생각해낸 창의적.. 더보기
30 - Fund raising 일자리 공고를 계속해서 보는 그에게, 한 공고가 눈에 띈다. Fund raising(펀드레이징)이라는 잡의 공고다. 시급은 최저, 인센티브에 대한 설명도 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이 없어, 감이 오지 않는다. 그가 이력서를 넣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다. 알고 보니 펀드레이징 잡은, 기금 모금 활동을 하는 일이었다. 한국은 조금 덜하지만, 호주 길거리에는 펀드레이징을 하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조그만 가판대를 만들어 놓고, 두 명 정도의 펀드레이저(Fund raiser)가 유니폼을 입고 서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서 붙잡고, 이러이러한 사업에 관심이 없냐고 이야기하면서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이다. 공익적 사업에 대한 기금 조성인 듯하다. 처음 보기에는 괜찮은 일인 것 같다.. 더보기
29 - 한인샵 면접 에이전시를 통한 육가공 공장 취업 프로세스는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 와중에도 전화가 오는 식당이 있으면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육가공 공장 취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식당에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재미와 면접 경험을 쌓으려는 의도가 컸다. 한인 웹사이트로 이력서를 넣은 한인 스시 샵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그는 면접에 응한다. 그는 은근히 영악한 구석이 있다. 그는 애초에 한인샵을 좋아하지 않는다. 붙더라도 일을 하지 않을 테지만, 굳이 한인 식당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는 자신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어느 정도로 성공했는지 알고 싶었다. 한인 식당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와 직원들은 어떤지, 어떤 모습과 표정인지, 자신이 그들보다 더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고 있.. 더보기
28 - 육가공 공장 에이전시 검트리 등의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공장 공고는, 칼을 써서 발골하는 숙련자나 관리자급의 공고 뿐이다. 기술이 없고 워킹 비자인 그는 공장의 일반 노동자, 즉 Process Worker로 일할 수밖에 없다. Prcoess Worker는 굳이 웹사이트에 공고가 올라오지 않는다. 전문성이 필요 없고 대규모로 채용하는 일반 노동자는, 공장 본사에서 채용하지 않고 외부 에이전시가 외주를 받아 채용을 대행했다. 에이전시는 도심에 위치해, 공장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에이전시를 방문하니, 그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가 육가공 공장에서 일을 하려고 찾아왔다 하니,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 말한다. 에이전시 건물은 깔끔하다. 잠시 후 직원이 그를 방으로 부른다. 몇몇 질문을 하더니, 직원은 그가 공장에서 일.. 더보기